구두 하면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이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전 세계 700 여 가지 버전 중 가장 유명한 프랑스 원본에는 원래 모피 구두였다.
그러던 것이 프랑스 아동작가 샤를르 페로의 번역실수인지 아니면 기지(機智) 때문인지 단어가 뒤바뀌어 그렇게 되었다 한다. 프랑스어로 ‘유리’와 ‘모피’의 단어가 철자는 조금 다르나 발음이 같아 그렇게 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거다.
신분상승의 신발이야기는 여기서 그냥 아름다운 동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의 역사와 사회, 문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발로 노예와 자유민을 구별할 수 있었다. 노예는 신발을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맨발은 바로 비천한 노예의 신분을 의미했던 거다.
그런가 하면 혼란스러운 사회에서는 부츠가 유행하고 여성의 권리가 억눌렸던 시절에서는 작고 불편한 신을 강요당했던 시대적 양상도 있었다. 반대로 근자에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신발을 벗어던지는 퍼포먼스로 여성권리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사보타지(태업)’란 말도 프랑스 노동자들이 나막신 ‘사보’를 기계 속으로 던져 공장 문을 닫게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니 노동권과도 무관하지 않은 거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집트 고급매춘부의 신발바닥에는 교묘한 장치가 있어 그가 걸어갈 때 ‘나를 따라 오라’는 문구가 땅에 새겨지게 한 경우도 있었다 하니 마켓팅에도 일조를 했단 뜻일까?
암튼 신발이 이렇듯 단지 우리의 발을 감싸는 일차적 목적 외에 다양하게 역사와 사회, 문화의 흐름과 함께 해 온 것이라면 신발의 사용에 따른 그 의미 또한 중요할 것이다. 어느 신을 어떻게 신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 내지는 인생관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하느님은 시나이 산에 올라간 모세에게 제일 먼저 ‘신을 벗으라’고 했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고 추방당한 후 인간이 처음으로 만든 신발인즉 인본주의, 우리 위주의 것을 먼저 버리라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히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구두의 굽을 높이기까지 했다. 키 작은 사람과 관련된 ‘나폴레옹 컴플렉스’란 말의 주인공, 나폴레옹은 168cm의 키로 당시로선 그리 작지 않은 키였음에도 불구하고 키를 더 커 보이게 하려고 승리한 전쟁의 모습을 그려 넣은 높은 굽의 신발을 신었다 한다.
공교롭게도 그와 같은 키의 소련의 스탈린 수상이나 영국의 처칠 총리 또한 2차 세계대전 동서 양 진영의 두 인믈로 이후 세계질서를 주무른 정치인들이었다. 헌데 이들과 비슷한 키로 웃통을 벗고 승마도 하며 남성미를 과시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공개된 사진에서 이른바 하이힐,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화제다.
이를 미리 예견했던 걸까?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후계자를 선정할 때 푸틴의 작은 키 때문에 무척 고민했다고 하던데 러시아 옛제국의 부활과 차르(Czar)를 꿈꾸며 세계를 어지럽히고 있는 그에게 키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키가 작은 이들이 성취욕이나 집착으로 그 컴플렉스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말도 있는 반면 한때 뉴욕타임즈가 ‘키가 180cm 정도는 돼야 제대로 대접받는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키가 중요한 조건이기는 한 것 같다.
헌데 ‘이력서(履歷書)’란 말의 뜻이 ‘신발이 걸어온 역사’라고 하니 각자가 잘못 걸어온 길이라도 맘먹기에 따라서 다시 시작한다면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의미일터. 해서 이력서 ‘Resumé(레주메이)’와 다시 시작한다는 ‘resume(리줌)’이 같은 스펠링인 것이 아닐는지.
과연 푸틴의 하이힐은 어느 길로 향하는 신발이 될는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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