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이스 신화에 ‘시지프스 (Sisyphus)’이야기가 나온다.
신들은 그가 엿보기를 좋아하고 입이 싸서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폭로한다고 미워했다. 하루는 바람둥이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한 요정을 납치해 간 것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화가난 제우스(Zeus)는 저승사자 신에게 그를 잡아 처리하라 명령했다. 허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그가 오히려 저승사자 신을 묶어 가두어 죽이자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일이 이쯤 되자 몹시 화가 난 죽음의 왕 하데스(Hades)가 시지프스에게 벌을 내렸다. 커다란 바위를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놓으라고 했다.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에 당도하면 돌은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진다. 다시 밀어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고. 영원히 바위와 씨름을 해야만 하는 참혹한 형벌이었다.
헌데 이런 엿보기의 형벌이 인간 세계에서도 일어났다.
11세기 영국의 코벤트리 (Coventry) 마을에 심술 고약한 영주가 있었는데 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하는 등 폭정을 일삼자 부인이 앞장서서 제발 세금을 적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여러 번 계속되자 귀찮아진 남편은 빈말로 부인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 그러겠노라고 하였다. 차마 정숙한 부인이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정말로 알몸으로 마을을 돌기로 했다. 이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지자 마을사람 모두는 그녀의 사랑과 용기에 감복한 나머지 그 날만은 모두 창문을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 헌데 양복쟁이 탐이 몰래 커튼 사이로 부인의 알몸을 엿보려다가 그만 눈이 멀어 버렸다. 이때부터 ‘피핑 탐(Peeping Tom)’은 몰래 엿보는 이를 빈정거리는 말이 된 거다.
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심리나 탐내는 욕심은 피핑 탐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 개인을 넘어 국가간에도 들여다보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창문틈을 넘어 열쇠구멍으로까지 들여다 본다. 오늘날에야 열쇠구멍 안이 막혀있지만 옛날에는 밖과 안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해서 구멍을 나타내는 여러 한자 중 들어가는 곳과 반대편 나가는 곳이 동일한 구멍을 뜻하는 공(孔)자를 써 열쇠구멍을 쇄공(锁孔)이라 하는 연유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의 광학정찰 위성의 코드네임이 바로 이 ‘열쇠구멍으로 훔쳐 본다’는 뜻의 ‘키홀(Key Hole)’이다. 머릿자 KH에 숫자를 붙여 KH-1에서 시작해 지금은 KH-13을 사용한다. 이 위성의 모양과 크기는 허블 우주망원경과 닮았는데 하늘의 별을 관측하듯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을 지구 쪽으로 돌려놓은 형태다.
헌데 그 정밀도가 어찌나 섬세한지 2019년 폭발사고가 일어난 이란의 로켓 발사대를 찍은 사진에서 불타버린 차량들 뿐 아니라, 발사대 바닥에 써있는 글씨까지 선명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근자에 중국 정찰 풍선이 미국 영공에 나타나 주권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중국은 기상관측을 위한 기구가 흘러 들러간 것이라 해명하지만 미국은 이를 첩보 행위로 간주하고 격추해 분석에 들어갔다.
한때 전 세계가 불법도청으로 온통 시끄러워 ‘피핑 시지프스’ 당국들이란 말이 한참 회자되더니 때 아닌 정찰풍선으로 이젠 ‘키홀 시지프스‘ 국가들이 되는 모양새다.
아무튼 남의 알몸을 훔쳐 보려 했던 탐은 눈을 잃었다.
그러나 알몸도 마다했던 영주의 아내 고디바 (Lady Godiva)는 오늘날 초코렛의 이름으로 남아 만인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 다만 시지프스의 엿보기 버릇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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