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 어느 정도 심각한 잘못으로 받아들여지는가는 문화에 따라 다르다. 고백하지만 나도 대학교 때 친구 실험 레포트를 베껴낸 적이 있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사회정의를 외치던 대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죄책감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미국사회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거짓말이 거의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산층의 평범한 시민들은 서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가 무엇일까 의심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파서 수업에 빠졌다는 학생의 말에 교수가 의심스럽다는듯이 정말이냐고 거듭 물어보면 그 학생은 모욕당했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에게 거짓말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인신공격이다. 미국 사회에서 정직함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습된다.
초등학생이 짧은 레포트를 쓸 때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도용하지 않고 올바르게 인용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거짓말 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입학원서에 봉사활동 경력을 증빙하는 서류를 첨부하는 일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에게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을 당연히 기대하기 때문에 입학원서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문구아래 본인이 사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 학생들 가르칠 때 곤혹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취업준비하는 졸업반 학생들이 취직을 했거나 혹은 취직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출석하지도 않았는데 출석으로 해달라거나 특정 점수 이상을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즉 나에게 거짓평가를 할 것을 당당히 요구하였다. 그들은 사정을 이야기하였고 다른 강사나 교수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압력’을 넣었다.
또한 교수들도 대리출석 같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묵인해주는 것을 많이 보았다. 오히려 대리출석 안하는 학생을 ‘고지식하다’고 딱하게 여겼다. 데모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던 학생은 시험을 망쳐도 좋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수들도 있었다. 이번 조국 사태의 발단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는 조국 딸의 허위논문도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이지 대학입시현장에는 경력이나 스펙을 사실보다 부풀리는 일이 흔하다고 최근에 자식을 대학에 보낸 한 지인은 얘기한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거짓을 부추기는 사회다.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사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도덕적 가치관은 서구에서도 근대에 들어와서 개인주의와 함께 확립되었다고 나는 본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자본주의 시장경제, 민주주의 정치제도 등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외부 세계를 객관화하는 주체로서의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엄한 개인을 상정하지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
종교적 가치관과 자본주의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를 연구한 막스 베버는 서구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고대사회부터 있어왔던 탐욕스런 부의 축적 (the pursuit of greed)과 구분하였다.
베버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개혁 이후 신교도들은 현세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며 재물을 쌓는 것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정직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일하고 저축하고 투자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상공업활동에 부여된 종교적 의미는 많이 퇴색하였지만 경제가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기초하여 움직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더욱 더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짓 자료에 근거하여 거짓으로 평가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과 재산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허무는 일로 간주되어 심각한 범죄로 다루어진다. 거짓이 난무할 때 사회정의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개인보다 집단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거짓말은 쉽게 용인된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에서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양반선비에게 있어서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이었고 죽은 후에도 아들과 아들의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 후손들을 통하여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먼 과거의 조상과 미래의 후손이 동일시되었고 개인의 삶은 대대로 존속하는 가족집단인 家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친족집단 밖의 국가도 家가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국가의 목적이 백성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데 있었던 조선시대의 통치철학은 부모에 대한 효는 백행의 근본이어서 효도하는 백성이 많으면 저절로 나라의 질서가 잡히고 백성들은 평온하게 살 것이라고 보았다. 선비들의 꿈이었던 ‘입신양명’은 국가의 정치무대에서 덕망높은 관직자나 유학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었고 이는 또 동시에 부모에 대한 효도였으며 집안을 일으켜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 있어서 나 자신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며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유교적 도덕률이 언제나 실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떳떳하게 추구하지 못할 때 말로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실제로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인류학자들이 연구했던 소규모 전근대적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이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분쟁과 갈등이 일어날 때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나 도덕적인 원칙에 따라 해결되지 않았다. 도시화,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기 전의 한국 농촌에서 현지조사를 했던 외국의 인류학자들도 비슷한 점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전통적인 한국 농민사회에서도 분쟁이 생길 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원리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쟁은 흔히 비공식적인 뒷담화의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이 때 지지자들을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는 당사자들의 정치적 능력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해결을 하였다. 그리고 지지자들을 동원하는데 있어 당사자들의 인간관계와 그들이 살아온 내력에 대한 평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난 두 달 동안 벌어진 ‘조국사태’는 한국의 전통적 농민사회에서 갈등과 반목이 전개되던 양식을 판박이로 재현하였다. 양심적 ‘강남좌파’로 알려졌던 조국과 그의 친인척이 거짓 논문, 거짓 표창장, 거짓 인턴 활동, 수상한 사모펀드 운용, 웅동학원 운영과 관련된 비리 등 온갖 거짓말에 연루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대부분의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조국이 실제로 어떤 불법 혹은 부도덕한 행위를 했는가 하는 객관적인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짓 스펙을 쌓는 것은 너도 나도 하는 일이었으며 대부분의 의혹은 ‘극우’ 언론에 의하여 조작된 가짜 뉴스이거나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국이 사회주의자로 노동운동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위해 ‘의롭게’ 살아왔다는 내력과 평판이었다. 그들은 조국의 도덕적 우월성을 의심치 않았다. ‘적폐청산’, ‘검찰개혁’과 같이 사회의 ‘거악’을 일소하는데 조국은 적임자라고 외쳤다.
일부 지지자들은 조국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으로까지 비유하였다.
조국과 그의 가족을 변호하는 변호인들이 십여 명이나 되어도 검찰의 수사결과를 기다려 법정에서 싸우기보다 조국 지지자들은 촛불시위로 더 많은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조국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SNS 등으로 전해지는 온갖 소문과 동영상은 조국 일가에게 불리하였다.
특히 조국의 부인 정경심에 대한 평판은 박근혜 대통령 때의 최순실보다 더 안좋았다. 정경심에 대한 세간의 악평은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국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결국 조국은 법무부 장관 직에서 사퇴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조국 반대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은 ‘좌파’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촛불 시위를 ‘민의’라고 생각하고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추켜올렸었다.
그러나 분쟁이 있을 때 자기 편을 들어주는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전략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개인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근대적 정치경제 제도와 인권의식이 부재한 소규모 공동체 사회에서 사용하는 전략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제도화된 문제해결방식이 없는 조직사회에서 조국 사태와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든 재벌기업이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식적인 절차보다 비공식적인 뒷담화를 통하여 형성된 여론이 조직 내의 의사 결정에 더 영향을 끼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다. 그 과정에 남에 대한 험담, 거짓 뉴스, 중상모략이 범람하고 선전선동에 의해 내분은 격화된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과 권리가 분명한 제도권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구 몇 천만의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한국사회에서 시민들이 의사표현을 하기 위해 쟁점이 있을 때마다 대규모 집단 시위에 의지하는 것은 전근대 사회로 퇴행하는 것이다.
✽김은희 교수는 서울대 의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학 중앙연구원 전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일제시대의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From Gentry to the Middle Class: The Transformation of Family, Community, and Gender in Korea”(박사학위논문), 「도시 중산층의 핵가족화와 가족 내 위계관계 변형의 문화적 분석」(『한국문화인류학』, 1995), 「문화적 관념체로서의 가족: 한국 도시 중산층을 중심으로」(『한국문화인류학』, 1995), “‘Home is a Place to Rest’: Constructing the Meanings of Work, Family and Gender in the Korean Middle Class”(Korea Journal, 1998), “Mothers and Sons in Modern Korea”(Korea Journal, 2001), 「대가족 속의 아이들: 일제시대 중상류층의 아동기」(『가족과 문화』, 2007) “도시 중산층 기혼여성의 취업과 부부 역할:’자기 일’의 정치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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