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15) ‘천공의 괴물’ 파이브아이스: 한국 그리고 나인아이스

영국인 패트릭 댈즐-잡(Patrick Dalzel-Job)이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연합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리고는 노르웨이 상륙 작전에서 해군 정보국장 보좌였던 이안 플레밍(Ian Fleming)의 소속 특수부대 한 팀을 이끌고 기습작전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과 관련된 업무는 수행하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어선을 이용해 독일 나치로부터 많은 민간인을 구해냈다. 이로 인해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지만 노르웨이 국왕이 그의 공로에 대한 작위를 수여하는 덕분에 형 집행이 유예되었다.
후에 이안 플레밍은 영국 해외정보국 소속 첩보원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써 007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켰다. 나중에 패트릭 댈즐-잡은 이안 플레밍이 제임스 본드가 자신을 모델로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이안 플레밍에게 본드는 자기 스타일이 아니며 본드처럼 애주가도 아니고 자신은 오직 한 여자만을 사랑했다고 항의했다고 한다.

영국은 크게 3대 정보기관의 구조를 갖고 있다. MI-5, MI-6 그리고 정보통신본부(GCHQ)가 그것이다.

MI-5는 내무부 소속의 국내 방첩 및 보안 담당 부서이고, MI-6는 외무부 소속의 대외정보기관이다. 육군이 주축인 군 정보부(Military Intelligence) 5국이 MI-5로, 해군이 주축인 6국이 MI-6로 분리됐다. 영국 정부는 이 두 기관의 존재를 대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1989년 보안국법이 제정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난 거다.
‘젓지 말고 흔들어서(shaken, not stirred)’라며 보드카 마티니를 주문하는 영화 대사로 유명한 007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곳이 바로 MI-6다. 007 시리즈는 지난 60년 동안 25 편을 선보였다. 그 중 2015년에 나온 24번째 시리즈 ‘007 스펙터(SPECTRE)’에서 MI-6는 내외부 양면에서 위기에 놓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외부로는 악당 스펙터가 전 세계 네트워크의 장악을 꿈꾸며 MI-6 조직을 없애고자 하고, 내부로는 스파이 요원에 정보를 의존하는 시대는 저물고 제임스 본드를 ‘구닥다리’ 취급하면서 MI-6를 해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IT의 발달로 첩보전이 예전과 다르게 인공위성으로 시설을 살피는가 하면 사이버를 이용하거나 통신 네트워크에서 도감청하는 시대가 됨에 따라 영국 정부가 8개 국가와 정보공유 협력 논의를 진행하며 통합감시체제로 대체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바로 ‘나인 아이즈(Nine Eyes)’ 즉, ‘아홉개의 눈’이었다.
헌데 우연치고는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 1941년 영국에서 두 나라간의 비밀 정보회의를 가졌다. 독일의 암호체계를 풀었던 앨런 튜링을 비롯한 암호해독 전문가들이 모여 독일과 일본의 암호를 포함한 극비정보를 공유했다.
이 후 1946년 양국은 정보교류 비밀협정을 맺었고 뒤에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가 동참하면서 이른바 5개국의 정보 동맹인 다섯개의 눈, ‘파이브 아이스(Five Eyes)’가 구축되었다. 말하자면 앵글로 색슨 계열이자 과거 영연방였던 국가들만의 첩보 네트워크인 셈이다.
이렇게 ‘파이브 아이스’는 애초 소련 등 동구권과의 냉전에 대응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냉전이 붕괴된 후 미국은 세계 최대 전자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론(ECHELON)’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통신을 감청해 광범위한 정보수집에 나섰고 산업기밀 획득이나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감시대상은 더 확장됐다. 그리고 그 정보는 미 국가안보국(NSA)에게 보내져 심층 분석된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 등은 NSA가 전문 해커, 침투 기술자 등 소위 ‘핵티비스트(해커+액티비스트)’로 불리는 요원들을 동원해 전 세계 각국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NSA는 테러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명분으로 개인 정보를 수집했다며 해명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5개국 이외의 주요국 정치인이나 민간 영역도 감시 대상에 오른 사실이 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됐다. 위성 활용은 물론이고 해저 광케이블에 특수 감청기기를 부착해 전 세계 통신과 인터넷, 이메일까지 모니터링 한다는 거였다.
마침내 전세계 35개국 우방국 정상들의 휴대폰까지 무차별하게 감시 대상으로 삼은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세계가 분노했다. 유럽연합(EU) 회원들은 재발방지를 위한 유엔 결의안을 추진하는 한편 미국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회원국들이 테러와 관련된 금융계좌에 관한 정보를 미국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가지기도 했다.
스노든은 이를 두고 ‘초국가 정보조직’이라고 불렀다. 각국의 현행법에 따른 책임을 벗어나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나온 얘기일까? 미 국가안보국(NSA)의 또 다른 별명 ‘No Such Agency’, 즉 ‘그런 기관 없다’라는 말 말이다.
하지만 1949년에 만들어진 군안전국이 1952년 트루먼 대통령 때 국가안보국(NSA)로 바뀌고 새로운 행정부에 따라 그 권한의 확대와 축소가 거듭되다가 2008년 부시 대통령 때 법원의 영장 없이도 국제 전화와 이메일 등의 도청을 합법화하는 개정안이 성립되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이 NSA는 역사상 가장 큰 국제전자감시망인 에셜론을 통해 매일 24시간 지구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전화 통화, 팩스,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매일 30억 건 이상의 통신을 듣고 지켜보며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중국 견제가 얼마나 중요한 미국의 외교 과제인가를 강조하자, 중국은 파이브 아이즈가 중국의 발전을 막는 조폭단체라고 비판하면서 ‘그들이 5개의 눈이 있든 10개의 눈이 있든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을 해친다면 눈이 찔려 멀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으로 강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헌데 지난 2일 미 하원은 기존 5개국의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과 일본, 인도, 독일 4개국을 포함하기 위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위 ‘나인 아이즈(Nine Eyes)’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가치를 공유하는 민주국가끼리 상호 신뢰를 확대하자는 취지다.
그러면 미국은 왜 그동안 지켜온 ‘앵글로 색슨 순혈주의’를 버리면서까지 한국과 일본, 인도, 독일 등을 참여시키려는 걸까? 기존 5개국에 4개국을 더 추가해 정보 네트워크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의 패권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국의 고민은 한국이 과연 최고 기밀 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가라는 점에 있다고 한다. 한국의 비밀 유지 능력과 의지가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한국 또한 그 제안을 받아드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때문에 미국은 고급 정보가 북한이나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고 중국은 또 다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거다. 아무튼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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