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헤이스팅스 (Wilmot Reed Hastings, Jr.)는 스탠퍼드 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어느 날 빌린 비디오를 제때 반납하지 않아 연체료가 붙자 의문이 생겼다. ‘왜 연체료를 내야하지?’ 당시 비디오와 DVD 대여 업체 1위는 블록버스타였는데 빌린 비디오를 약속한 기일 안에 반납하지 않으면 연체료를 물어야 했다.
그러한 의문이 든 헤이스팅스는 1997년 동료와 함께 비디오와 DVD를 우편이나 택배로 배송하는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흔히 널리 알려진 이 일화는 훗날 이야기 거리로 덧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발적인 창업이 아니라 두 사람이 이미 여러 사업을 구상해 오던 중 하나인 비디오 대여 사업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 사업이 언젠가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혜안에 맞을 만큼 당시 IT 기술은 충분하지 못했다.
해서 일단은 기존의 비디오 대여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른 업체들과는 다르게 연체료를 없애고 대신 구독료를 받는 방식으로 바꿨던 거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넷플릭스(Netflix)다. 인터넷(net)과 영화(flick)를 합한 이름이다.
사업은 그런대로 잘 돌아갔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적자가 쌓이자 ‘블록버스터’에 인수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던 중 IT기술의 발달로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사업장을 인터넷으로 옮겨 스트리밍 서비스로 확장하고 컨텐츠와 서비스 대상 국가를 늘려갔다.
당시는 가정에서 케이블TV나 컴퓨터를 통해 방송사나 공급사가 전송하는 대로만 영상물을 볼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별도의 셋톱 박스를 TV에 연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와 달리 스트리밍 서비스로 원하는 영상물을 수동적이 아닌 주문형으로 선택해 볼 수 있게 했던 거다. ‘스트리밍(streaming)’은 전송된 화일이 다운로드 없이 전송되는 대로 실시간 ‘물이 흐르듯 바로 볼 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서 온라인 동영상을 셋톱박스 없이 초고속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하여 OTT (Over-The-Top) 즉, 셋톱박스를 넘어서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된 것인데 이로인해 현재의 넷플릭스 모습이 갖추어지게 된 반면 블록버스터는 급변하는 혁신에 대응하지 못한 채 결국 파산했다.
이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에 들어가자 미국 드라마가 한국 시장을 점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한국 드라마가 넷플릭스 망(網)을 통해 전세계 안방극장을 공략하는 형국으로 날개를 단 셈이 된거다.
그러더니 드디어 이번에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지난 달26일 현재 전 세계 76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시리즈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게임 종목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오징어 놀이’ 등 중장년층이 어릴 적 즐기던 놀이를 소재로 삼고 있다.
헌데 무척 살벌하고 아주 잔혹하다. 빚더미에 앉은 인생 막장에 부딪친 456명 중1등만이 상금을 독차지하는 승자독식 구조의 생존게임인데 최종 승자 1명에게는 456억 원이라는 상금이 주어지지만 탈락자 모두에게는 참혹한 죽음이 기다리는 ‘데스매치(Death Match)’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제목이자 게임 종목 중 하나인 ‘오징어 놀이’는 주로 1970-80년 대에 땅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그림을 그려 놓고 하던 어린이들의 놀이였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중 가장 격돌적인 것이 ‘오징어 가생’이라고 한다. 아무리 그렇기로 어린이 놀이가 그렇게 비정하고 암울한 게임으로 탈바꿈을 할 줄은 몰랐을 거다. 해서 일각에서는 물질 만능 사회의 병폐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어린이들의 놀이가 지닌 순수성과 동심마저 훼손되어야 하는가 우려를 표하고 있느느 거다.
흔히 오징어는 적이 공격하면 먹물을 품어 연막작전을 쓰고 도망가는 유약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개중에는 사기를 쳐 암컷을 유인하는가 하면 가공할 포식자로 동족까지 해치는 사납고 무서운 종(種)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징어는 ‘오적어(烏賊魚)’에서 변한 말이라는 설화도 있다. 오징어는 10개의 다리 중 긴 2개를 이용해 먹이를 잡을 때나 교미때 사용한다고 한다. 일례로 물 위에 죽은 듯 떠 있다가 까마귀가 달려들면 그 긴발로 잡아 먹는다는 거다. 해서 ‘까마귀의 적’이란 뜻으로 ‘오적어(烏賊魚)’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져 상대를 속이거나 믿지 못할, 혹은 지키지 않는 약속을 ‘오징어 묵계’라고도 했다. 게다가 서구 특히 영미권에서는 말린 오징어를 무척 싫어하는데 구울 때 시체 타는 냄새과 유사하기때문에 곤혹을 치뤘다는 일화들도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시사하는 바가 단순하지만은 아닌 듯 싶다.
아무튼 이런 장르의 유형으로는 일본의 ‘배틀 로얄’, 미국의 ‘헝거 게임’ 등이 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들이 게임 속에서 하나의 ‘말(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스토리가 있고 영웅이 아닌 낙오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에 외국인에겐 낯선 놀이지만 어린이의 놀이인 만큼 게임의 법칙이 단순해 이해하기 쉬워 낯선듯 익숙해지는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어가는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에 크게 작용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넷플릭스 측도 한국이 ‘손에 꼽히는 스토리텔링 강국’이라며 ‘넷플릭스를 통한 K콘텐츠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의 콘텐츠들이 사건에 집중한 전개라면, 한국의 스토리텔링은 사건보다는 그것에 대한 감정을 디테일하게 조명하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쉽게 공감하고 반응’하는 점이 K콘텐츠의 매력이라고 했다.
이렇듯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세계가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 말이다.
그러니 이제 K시네마, K팝을 넘어 K드라마로까지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평가대로 모쪼록 우리의 ‘이야기꾼 DNA’ 저력이 문학이나 미술 등 순수예술로도 확장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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