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헤로(Hero)는 아프로디테 여신 신전의 무녀이고 레안드로스(Leandros)는 바다 건너 섬에 사는 청년이었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헤로가 여사제였으므로 결혼할 수가 없었다. 해서 헤로는 매일 밤 자기 집 탑 위에 횃불을 밝혀 그가 해협을 헤엄쳐 건너와 만나고 날이 밝기 전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작스런 폭풍으로 횃불이 꺼지는 바람에 해협을 건너던 레안드로스는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물에 빠져죽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헤로는 탑 아래까지 파도에 밀려온 그의 시체를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해 탑에서 몸을 던졌다.
헌데 1810년 22세의 영국 청년이 레안드로스처럼 이 해협에 뛰어들어 헤엄쳐 건너고나서 발표한 시(詩)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깜짝 놀란 그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청년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이었다.
바이런은 과격하고도 충동적인 성격이기는 했지만 조각같은 용모에 문학적 위상이 더해지면서 숱한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그는 한쪽 발의 선천적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체력 단련에 몰두하 나머지 여러방면의 운동에 상당한 실력을 갖게 되었는데 특히 수영을 좋아해 신화에 나오는 대로 흉내를 내본 거였다.
이런 바이런이 귀족 출신 여인과 결혼해 딸 에이다(Ada)’를 낳았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방탕함을 견디지 못해 1년 여 만에 딸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났다. 여성 관계가 복잡한 그가 이복 사촌 누이와도 사랑에 빠지고 불미스러운 소문이 나면서 상류사회에서 배척되고 환락과 도박에 빠져들게 되고 비난이 더욱 심해지자 영국을 떠나 유럽을 방황하다가 그리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편 에이다의 어머니는 딸이 그러한 남편의 방랑벽과 낭만적 기질을 이어 받을까하는 우려로 그녀가 문학 분야에서 멀리하고 수학이나 과학에 열중하도록 애를 쓴 덕분에 에이다는 당대의 뛰어난 과학자, 수학자들로부터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뛰어난 수학자이자 과학자 그리고 기계 공학자였던 찰스 배비지를 만나게 된다. 그는 1차로 증기엔진으로 움직이는 계산기계를 만든 후 좀더 발전한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을 설계했는데 오늘날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와 기억장치같은 거였다.
헌데 배비지가 에이다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조수로 해석기관 연구에 동참시켰다. 이 연구에서 에이다는 단순히 계산이나 수치를 처리하는 장치였던 해석기관에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적은 최초의 알고리즘 방식 등으로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중요한 기본 개념들을 포함시켰다. 더 나아가 해석기관에 명령 언어를 이용하면 기계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작곡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 것이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해내고 미래의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을 설계하는 획기적인 성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석기관이 완성되지 못하자 에이다의 혁신적인 생각 또한 거의 잊혀지고 묻혔다. 시대는 천재를 알아 보지 못했고 그녀는 우울증과 도박중독, 게다가 자궁암까지 발병하면서 마약으로 통증을 견디다 끝내 세상을 떠났다.
100년 후, 그녀는 앨런 튜링에 의해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이 때 독일의 암호장치 애니그마(Enigma)는 영국에겐 해독하기 어려운 골치거리였다. 애니그마는 내용이 입력되면 전혀 다른 암호코드로 변해 출력되는데다가 해독키 마저 수시로 바뀌어 그 조합수가 무려 수천만-수억개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암호해독반을 꾸미고 천재수학자이자 암호학자이고 그리고 컴퓨터 공학자인 앨런 튜링 (Alan Turing)에 임무를 맡겼다. 4년 후 드디어 해독에 성공한 그의 성과로 영국은 독일 잠수함을 격파하고 연합군에게 승리를 안겨주면서 전쟁을 끝내게 되어1,400만 여명의 인류를 구제한 영웅이 되었다.
헌데 엘런이 암호해독을 위해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옛 자료를 들추다가 에이다가 설계한 최초의 프로그램의 가치를 알아보고 여기서 힌트를 얻어 미래의 컴퓨터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으로 진화할 것을 예언할 수 있었던 거였다.
전쟁이 끝난 후 앨런 튜링은 대학으로 돌아가 연산 기계 연구에 헌신하고 ‘튜링 머신’ 이라고 불리는 기계를 고안해 냈다. 이 기계가 단순한 연산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위도 재현할 수 있다고 내다보면서 단순한 계산기에서 복합기능의 스마트폰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AI로 이어지도록 구현하는데 필요한 튜링 개념, 튜링 완전언어 그리고 튜링 테스트 등을 구축해 놓았다. 그가 뛰어난 암호학자인 동시에 ‘컴퓨터의 시조’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엘런 튜링은 말년에 불운했다.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자라는 낙인으로 화학적 거세를 당한 후 독이 묻은 사과를 한 입 물고 죽었다. 이 일로 애플의 아이콘이 여기서 나왔다는 일설도 나왔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 ‘이미테이선 게임(The Imitation Game)’에서 잘 그려졌다)
엘런 튜링 등에 의해 에이다가 재평가되면서 인류 ‘최초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명성을 얻게 된 후 그녀의 이름은 여러 곳에 자취를 남겼는데 미 국방부가 만든 컴퓨터 언어에도 붙여지는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암호화페에도 붙어 ‘에이다 코인’은 ‘카르다노 블록체인’에서 거래되고 있다. 블록체인의 코인은 에이다의 노력에서 시작되어 튜링의 암호학에 힘입어 발전된 해킹 불가능한 데이타저장기술이 된 셈이다.
헌데 지금 플로리다에서 비트코인 재판이 열리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최초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처음 만든 사람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알려져 왔는데 이름만 알 뿐 신원은 베일에 싸여 있다. 그 동안 본인이 사토시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럿 나왔지만 모두 사기나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런 와중에 2013년 사망한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클라이먼과 크레이그 라이트가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로 비트코인 공동 개발자라고 주장하며 라이트가 갖고 있는 100만개의 비트코인 소유권을 놓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애당초 비트코인은 ‘탈(脫)중앙화’를 내걸었는데 비트코인을 대량 소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앙화’된 셈이니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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