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성의 혼외자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핏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핏줄’이라고 하는 혈연관계는 어느 사회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남자와 여자는 성관계를 갖고 그 결과 자식을 낳으니까.
그러나 인류학자들의 연구는 모든 사회에서 생물학적인 관계가 보편적으로 인지되고 같은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호주 북부의 티위 사회에서는 부성은 인지 되지 못하고 있다. 티위 사람들은 남자 없이도 여자들은 임신 된다고 믿는다. 즉 정령에 의해 여자가 언제라도 임신이 되기 때문에 여자는 언제든지 아이에게 ‘아버지’를 만들어 주기 위해 남편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자는 태어나자마자 남자와 혼인하며, 남편이 죽게 되면 즉시 아이들 데리고 새 남편과 결혼해야 한다. 파파 할머니가 되어도 과부가 되는 즉시 재혼해야 한다. 그리고 새 남편은 새 아내의 자식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 이름을 지어준 남자가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된다.
그러니까 티위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호칭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뜻을 갖고 있지 않다. 티위 사회에서 수렵채집 활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밴드는 보통 엄마와 이름을 지어준 남자와 그 남자가 이름을 지어준 아이들로 구성된다. 생식에 있어 남자의 역할을 무시하는 문화는 티위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호주 원주민 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볼 수 있고 태평양 제도의 여러 종족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양반 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인가를 중요시했지 생물학적 어머니는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아이의 생모가 첩이거나 씨받이인 경우 아버지의 정식 아내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유교의 종법에 따르면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물질인 ‘기’를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으며 딸은 물려받지 못했다. 따라서 딸은 조상제사를 물려받을 수 없었다. 딸은 생물학적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대를 잇는 자식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원주민 사회나 전근대 사회가 미개하고 생식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부성 혹은 모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다. 생식에 관한 비과학적 믿음은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로마법의 전통에 따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불확실한 경우 어머니의 법적인 남편을 아버지로 간주해왔다.
현대 기술이 발달하여 DNA 검사를 통해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어도 실제로 누가 아버지인가 혹은 어머니인가는 문화적 규칙에 따라 정해지는 걸 보게 된다.
90년대 노르웨이에서 어느 한 기혼 여성이 간통하여 낳은 아이의 생부가 자신이 생부임을 밝히고 아이의 아버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낸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하였으나 법원은 허락하지 않았다. 법원은 기혼 여성이 낳은 아이의 아버지는 그 여성의 법적 남편이라는 노르웨이 가족법에 따라 소를 제기한 생물학적 아버지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즉 누가 아버지로서 책임과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를 정하는 데 있어 생물학적 아버지냐 아니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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