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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32)] “크트머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

2022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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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것으로 알려진 ‘눈밭을 걷다(답설야:踏雪野)’라는 시(詩)가 있다.

‘눈 덮인 들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나의 행위가 남의 이정표가 될 수 있으므로 항상 올바른 자세로 겸손하게 해야함을 가르치고 있는 거다. 동시에 이는 뒤에 오는 이가 다른 사람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음 또한 명심하고 잘못을 거듭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여러 인사들도 종종 인용하는 이 시(詩)는 후에 조선 후기 시인 이양언의 ‘야설(野雪)’로 판명되었다.)   
  아무튼 매 순간 충실하게 살아라고 하는 이 가르침은 잘 알려진 라틴어 명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한다. 카르페 디엠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명문고에 새로 부임한 존 키팅 영어선생이 학생들에게 남겨주면서 널리 회자 되었던 말로 ‘그 날 그 날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아울러 이 말과 항상 동반되는 또 다른 라틴어 구절들로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나 ‘삶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아모르 화티(Amor Fati)’도 따지고 보면 모두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해서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해봤으면 하고 후회하는 때가 적지 않다. 이는 즐겁고 좋은 일은 반복되어도 좋겠지만 잘못된 일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어서인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은 연습이나 반복이 없는 단막극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음악에서 사용하는 ‘다 카포(Da Capo)’가 더욱 아쉽고 그리워지는 이유다. 다 카포는 ‘처음부터’라는 뜻을 가지는 음악 용어로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라는 말이니 우리네 삶도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2022년 임인년 첫 일출

그렇다고 종국엔 죽어야 하는 생명체의 운명의 한계에 한숨지울수만은 없을 거다. 꼭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신앙적 고백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로마 철학자 세네카가 ‘모든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의 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했듯이 죽음 역시 새로운 시발점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래서 그런 걸까?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칼라(Calla)’라고 하는 꽃이 똑같이 부케로 사용되는 것이 우연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칼라가 삶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꽃이자 또 다른 시간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니 말이다. 홀로의 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결혼이나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미지의 여정으로 들어가는 장례가 마감과 시작의 단절이 아닌 연속성을 지니고 있어서 일게다.   

영어권에서 졸업을 나타내는 graduation과 commencement 중 graduation이 과정마다 매듭을 짓는 거라면 commencement는 ‘시작’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는 셈인데 그러고 보면 이 두 단어를 하나로 묶은 우리 말의 ‘끄트머리’라는 단어가 참으로 절묘하다.
‘끝’이라는 말과 ‘머리’ 혹은 ‘일의 실마리’라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으니 말이다. 끝을 단순히 어떤 일의 마무리로만 여기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는 예지가 번득이지 않는가?

이제 끄트머리의 시간.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의 머리에 올라섰다. 새해를 맞이하여 시인이나 작가들의 말을 빌어보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 오거나 달력에서 오는 게 아니고 우리들의 대화와 눈빛 속에서 열린다(신동엽)’고 했다.
그러니 새해 머리에선 ‘세상이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살 만한 곳이며 한 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김종길)’하고 참을성을 가지고 꿈을 꾸면서 넉넉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 하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우리들 마음 속 꽃밭에 심은 삼백예순다섯 개의 꽃씨가 둥근 해가 떠오를 때마다 곱게 피어날 우리들의 새해 꿈(위영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21세기 팬데믹으로 지루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잘 견뎌온 여러분 모두에게 부디 새해엔 좀더 나은 날들로 채워지길 바라면서 또 다른 라틴어 명구에 이런 말도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Hoc quoque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관련기사 [김학천 칼럼(31)] 고양이와 쥐, 한 패 된 서글픈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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