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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34)] 권력과 알파벳 E 실험

2022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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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어떤 자리에 앉으면 거기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인데 왜 회사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의 사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른바 ‘알파벳 E 실험’이다. 2007년 노스웨스턴대 갤린스키 심리학 교수는 일정 대상집단을 권력그룹과 비권력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권력자 그룹에겐 남에게 명령했던 기억을 떠올리거나 적게 했고, 피권력자 그룹에겐 명령을 받은 경험을 쓰도록 했다. 그런 뒤에 상대방이 볼 수 있도록 알파벳 E를 자신의 이마에 써보라고 했다.
그 결과 권력자 그룹의 33%가 자신이 쓰기 편한 방향으로 E자를 적었다. 이럴 경우 상대방에게는 E자가 거꾸로 보이게 되는 거다. 반면에 피권력자 그룹에선 그 비율이 12% 정도였고 모두 상대방이 읽을 수 있게 글자를 적었다. 이는 권력자 그룹이 글자를 읽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고 경향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실험도 있다. 캐나다 연구진 역시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자신이 명령했던 경험을 쓰게 했고 다른 그룹은 명령을 받은 기억을 쓰게 한 후 한 영상을 보게 했다. 누군가 한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두 그룹 사람들의 뇌(腦)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 거다. ‘거울 뉴런(mirror neuron)’실험이다. 이는 직접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마치 그런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신경세포로 누군가 공을 쥐는 영상을 보게 되면 활성화되어 마치 자신이 공을 쥐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거다.
그 결과 명령했던 경험을 가진 그룹의 거울 뉴런은 거의 작동하지 않은 반면 명령을 받았던 그룹의 거울 뉴런은 활성화됐다. 권력있는 자들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실험들은 권력자들이 자기 중심적 사고 경향은 강하고 공감능력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다.
더 나아가 권력자들은 자신의 욕망이 정당하고,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고 여긴다. 이 때문에 매사에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편향적 사고를 갖게 되어 자신은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반해 상대방은 행동을 통해 평가하는 양면성을 보이게 되는 거다.
소위 ‘내로남불’이다. ‘나는 문제없지만, 너는 안 돼!’라는 생각인 거다. 예를 들어 내가 과속을 하는 등 교통법규를 어기는 경우 여러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부득이 했다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사소한 신호위반이라도 하면 그 사람의 소양까지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식이다.

배우 오영남

이외에도 권력에 취하면 타인과 동료를 괴롭히며 모욕을 더 많이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는가 하면 권력이 체내 호르몬을 변화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권력이 주어지면 남녀 모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하는데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도 권력 유무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모두가 인간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결과들로 권력에 취하면 오만해지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적어진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인간 본성일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각자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고 믿겠다는 ‘확증편향’으로 자기 중심적 사고가 강화되는 추세도 한몫한다.
하지만 실험결과가 말해주듯 권력자들 모두가 권력에 취하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은 권력 욕구과 정의 추구 사이의 어느 지점에선가 늘 갈등하는 것일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열연한 배우 오영수 씨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뒤 남긴 말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그가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한 말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그의 언급이 얼핏 자기 중심적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치만 않은 것은 오랫동안 남을 배려하고 자신에게 충실하는 겸허에서 이루어진 성과에 스스로 위안하는 자기 긍정으로 보여져 신선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는 드라마 흥행 후 주위의 각종 찬사나 유명세에도 연연하지 않고 배우로써의 초심을 지킬뿐만 아니라 광고 모델 제의마저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작품 본연의 가치를 흐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그는 세상을 향해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라고도 했다. 60년 노배우의 관록과 자긍심이 빛나 보인다. 수상을 축하한다.

관련기사 [김학천 칼럼(33)] 임인년 호랑이의 질타

관련기사 [김학천 칼럼(32)] 크트머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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