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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44)] 하루키가 들려준 노래들

2022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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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클래식, 재즈, 마라톤 마니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서 그의 소설에는 음악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녹아 들어있다. 더 나아가 하루키는 라디오 DJ로도 데뷔했다.
지난 18일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시간에 ‘음악에 전쟁을 그만두게 할 힘이 있는가? 솔직히 아쉽게도 음악에는 그런 힘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힘은 있다’며 제임스 테일러의 ‘네버 다이 영(Never Die Young)’, 더 도어스(The Doors)의 ‘이름 없는 병사’ 그리고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 등을 선곡했다.
‘이매진’의 노랫말처럼 이상주의자라고 할 지는 모르지만 그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전쟁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역사상 단 한번 노래가 전쟁을 멈추게 한 일이 있었다. 비록 이틀간이었지만 1차 대전 당시 독일군과 연합군의 병사들이 참호를 사이에 두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총성을 멈추었던 ‘크리스마스 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전쟁을 멈출 순 없다 해도 전쟁 속에 울려 퍼지는 음악은 위로를 주고 상처를 보듬고 삶의 의지와 용기를 북돋울 수 있어 감동적이고도 처연하다.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 한 곡이 전선을 넘어 연합군에게까지 전해지면서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사랑 받게 된 노래가 있었다.

독일 뮌스터에 세워진 릴리 마를렌 동상<커먼스 위키미디어 자료 사진>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는 전투도 잠시 멈추고 병사들은 고향에 두고 온 여인과 가족을 그리워했는데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란 노래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서 복무한 한스 라이프가 짝사랑하던 간호사와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지은 시(詩) ‘젊은 초병의 노래’에 붙여진 곡이었다.
이 노래가 적군이나 아군 할 것 없이 모든 군인들의 애창곡으로 발전하자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는 이 곡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방송국에 이 음악을 틀어달라는 군인들의 편지가 쇄도하자 어쩔 수 없이 방송금지명령을 풀었다고 한다.

더욱이 독일군 저격수에 공격 당했던 미군 부대의 한 병사는 위험도 무릅쓰고 가지고 있던 트럼펫으로 이 노래를 연주하자 그 저격수가 이에 감동받아 저격을 멈추고 눈물을 흘리며 항복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러한 일은 30년 전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도 일어났다. 빵을 사려던 22명의 시민들이 폭격으로 목숨을 잃은 다음날 바로 그곳에서 홀로 목숨 걸고 연주한

위키미디어 자료 사진

‘사라예보의 첼리스트’가 있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22일 간 그가 연주했던 곡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Adagio)’. 포격은 중단되었고 시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 곳곳에 배치된 저격수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그를 쏘지 않았다.
이토록 음악의 힘은 강하다. 해서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며, 죽음 앞에서도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하는 것일게다.
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獨蘇戰爭)에서 히틀러는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외부와 차단했다. 이 봉쇄로
1941년 9월 8일-1944년 1월 27일) 생존을 위해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시민들은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참극 속에서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연주를 들으며 그 끔찍한 872일을 이겨냈다.
전쟁 중에 완성된 쇼스타코비치의 이 악보는 마이크로필름에 담겨 나치의 봉쇄를 뚫고 서방에 전해져 전 세계가 그 곡을 연주하며 침략자를 규탄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곡의 연주를 위해 굶음으로 악기조차 들기도 힘들고 관악기를 불 힘이 없는 단원들로 악단이 꾸려졌다. 어떤 단원은 죽은 아내를 묻고 오느라 연습에 늦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연습을 시작했던 단원들 중 3명은 공연 직전에 굶어 죽었다. 객석은 굶주림 속에서도 배급표를 모아 입장권을 구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확성기를 통해 레닌그라드에 울려 퍼지는 연주에 시민들은 결속했다.
그렇게 나치의 희생자였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이번엔 우크라이나인들이 악기를 들고 일어섰다. 지난 9일 수도 키이우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폭격의 위험도 무릅쓰고 ‘독립광장’에서 야외 콘서트를 열고 우크라이나 국가 등을 연주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다 돼 간다. 서방 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식량과 석유 가격 폭등 등으로 생활 문제를 걱정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매일 수많은 생명이 부상당하고 죽어가고 있는 거다.
푸틴은 레닌그라드 봉쇄 바로 그곳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잊은 것일까? 그리고 나치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일까?

관련기사 [김학천 칼럼(43)] 우크라이나에 캔디 폭격기가 등장한다면

관련기사 [김학천 칼럼(42)] 종은 더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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