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신화에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거인 ‘아르고스(Argos)’가 등장한다.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의 아르고스는 잠잘 때도 항상 두 개 이상 눈을 뜨고 있어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어느날 바람둥이 제우스는 검은구름으로 변해 여사제 ‘이오(Io)’와 사랑을 즐긴다. 이를 눈치챈 제우스 부인 헤라가 현장을 덮치자 제우스는 이오를 황급히 암소로 변신시키지만 헤라가 그 암소를 달라고 하자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하는 수없이 넘겨준다.
헤라는 심복 아르고스를 시켜 암소를 감시하게 한다. 낮에는 풀을 뜯고 밤에는 묶여 눈물로 지새는 이오를 보다 못한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아르고스를 죽이라고 지시한다. 헤르메스는 양치기의 모습으로 변장해 아르고스에게 다가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며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들려주자 아르고스의 눈들이 하나 둘, 100개가 모두 잠든다. 헤르메스는 이 틈을 타 아르고스의 목을 베고 이오를 구해낸다.
헤라는 아르고스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자신이 아끼는 공작새의 꼬리깃털을 아르고스의 눈 100개로 장식했다. 공작새의 꼬리깃털에 있는 수 많은 둥근 무늬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오늘날 아르고스의 그 눈들이 다시 부릅뜨고 있는 모양새다. 미CIA의 한국 국가안보실 관계자 도청, 감청 의혹 파장이 거센 가운데 양국이 대처 설전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미국의 도감청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이미 오래다.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 영국과 가진 비밀 정보회의에서 암호해독 전문가들과 함께 독일과 일본의 암호를 포함한 극비정보를 공유했다. 그리곤 전후 1946년 양국은 정보교류 비밀협정을 맺고 뒤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동참하면서 5개국의 정보 동맹인 다섯개의 눈, ‘파이브 아이스(Five Eyes)’를 구축하였다. 이를테면 앵글로색슨 계열이자 과거 영연방였던 국가들만의 첩보 네트워크인 거다.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 전자통신감청 시스템인 ‘에셜론(ECHELON)’을 개발해 전세계의 통신을 감청해 광범위한 정보수집에 나섰고 산업기밀 획득이나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그 대상을 더 확장해 매일 24시간 전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전화통화, 팩스, 이메일, 문자메시지 등 매일 30억 건 이상의 통신정보를 국가안보국(NSA)에 보내 심층 분석한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5개국 이외의 주요국 정치인이나 민간 영역도 감시 대상에 오르고 전세계 35개국 정상들의 통신마저 도청했다는 사실이 전 CIA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
헌데 2021년 미 하원은 기존 5개국의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과 일본, 인도, 독일 4개국을 포함하기 위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소위 ‘나인 아이즈(Nine Eyes)’다. 이는 그동안 지켜온 ‘앵글로색슨 순혈주의’를 버리고 이들 국가들을 참여시켜 증국과 러시아의 패권 확장을 저지하겠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미국의 고민은 한국이 과연 최고 기밀정보를 공유할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가라는 점에 있다고 한다. 한국의 비밀유지 능력과 의지가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노든은 이를 두고 ‘초국가 정보조직’이라고 불렀다. 각국의 현행법에 따른 책임을 벗어나는 조직이라는 의미다. 그러고 보면 미국가안보국(NSA)의 별명 ‘No Such Agency’, 즉 ‘그런 기관은 없다’라는 말에 걸맞게 ‘No Such Action! 오리발’이 전혀 이상할 리 없다.
공작새가 깃털을 펼 때는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위 상대들에게 경고나 위협을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한다니 헤르메스가 부활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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