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말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여러 공국(公國)들 사이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헌데 당시 전투시에는 주로 전문적인 용병대가 활약했다.
그 중 베네치아 공국과 밀라노 공국의 전쟁에서 활약한 가장 용맹하기로 이름난 이가 ‘카르마뇰라’였다. 그는 밀라노에 고용되어 군대 통수권을 쥐고 베네치아를 침공했다. 밀라노 공작은 그를 무척 아꼈지만 일견 자신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나중에 일개 도시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이에 불만을 갖고 있던 그는 적국 베네치아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자 그곳의 총사령관으로 변신하여 이번에는 반대로 밀라노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간을 끌고 결정적인 전투를 피하면서 전쟁을 질질 끈다. 그러는 동안 다시 밀라노로부터 그가 베네치아를 버린다면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카르마뇰라는 두 곳의 운명이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자만심에 빠지게 된다.
이때 신속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원하는 베네치아는 작전 논의를 핑게로 그를 소환한 후 체포해 반역 혐의로 참수형에 처했다. 보다 더 많은 보수에 저울질하던 용맹한 용병의 최후였다.
보수를 받고 전투에 참여하는 용병은 고대로부터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활용되던 제도로 인류사와 그 역사를 같이 해왔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는 물론 로마 제국 본토를 쳐들어갔던 한니발 군대도 외부 용병들의 비중이 매우 컷으며 상비군을 고집했던 로마조차 숙련된 용병들을 썼다. 그러다가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게 멸망 당하기까지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용병들이 서로 짜고 분쟁을 일으켜 싸우는 척하면서 보수만 받는 일도 있었다. 보수를 목적으로 싸우는 용병에게는 충성심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거다.
해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용병을 쓰는 건 최악이고 동맹군은 악이며 오직 자국군만이 최선’이라면서 ‘용병대장이 유능하면 왕의 지위가 위태롭고, 무능하면 왕의 돈이 아까운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 최정상급은 네팔의 구르카족 용병들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체력과 끈기를 단련시키고 맨몸으로 하는 전투에서만큼은 최고로 싱가포르 경찰부대에 고용된 그들이다. 한국전쟁 때 영국군에 속한 구르카 용병 1개 대대가 중공군 1개 사단을 격파함으로써 중공군이 처음으로 패배하게 했으며 2018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회담시 경호를 맡기도 하는 등 그 활약이 수없이 많다.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여 온 러시아 용병 부대 ‘바그너 그룹’이 군부와의 갈등으로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로 역진격했다. ‘살인 용병’으로 불리며 분쟁 지역에 푸틴 특수부대로 악명을 떨쳤던 용병그룹 수장이 푸틴에게 등을 돌린 것이다.
벨라루스의 대통령 중재로 상황은 하루 만에 종료됐다지만 이것으로 끝난 것일까?
푸틴이 사라질 날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는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아무튼 바그너 그룹이란 이름은 이 용병그룹 공동 창업자가 숭배하는 작곡가 바그너를 따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생전에 반(反)유대주의자였던 바그너는 작품에서 유대인을 사악하게 그렸다. 그런 바그너를 열렬히 숭배하고 좋아한 이가 히틀러다.
헌데 나치로 인해 참혹한 고통을 겪었던 러시아가 또 다시 바그너 이름 아래 전쟁 범죄를 저지르는 용병들의 반란 사태까지 맞았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김학천 타임스케치]K-영화의 고민, 엉터리 번역과 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