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국시대의 걸출한 세 인물에 대해서 많이 알려져 있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울지 않는 새가 있다면, 오다 노부나가는 ‘그 새를 죽이겠다’고 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새를 울게 하겠다’고 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그것이다.
세 사람의 성격을 잘 나타낸 말로 목적 달성을 위해 오다 노부나가는 즉각적 결단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지략적 행동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략적 인내를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라’는 얼핏 알렉산더 대왕의 매듭풀기를 연상시킨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고르디우스와 아들 미다스 왕 부자가 타고 다니던 마차를 신전에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 두었는데 ‘이를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졌다.
후에 이곳에 진군한 알렉산드로스 3세 즉, 알렉산더 대왕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풀려고 애썼으나 안되자 칼로 매듭을 끊어버렸다. 신탁대로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의 왕이 되어 인도 지역까지 광대한 알렉산더 대제국을 이룩했다.
‘울지않는 새를 죽이는 것’이나 ‘매듭을 단칼에 끊는 것’은 일견 결단력을 보이는 것인 반면 타협 없는 폭력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허나 폭력은 역풍을 낳는 법. 그래서 그랬는지 알렉산더 제국은 그의 사후에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고 오다 노부나가는 천하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반란세력에 의해 삶을 마쳤으며 재빨리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오사카 성에 입성해 천하를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쓸쓸히 죽었다.
결국 참고 기다린 덕인지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먼 길과 같으니 서두르지 마라’는 유훈을 남겼다고 한다.
새들은 일생을 날아도 서로 부딪히는 법이 없고 같은 장소에 모여도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해 경쟁을 피한다고 한다. 또한 자연과 생명의 길이 직선이 아닌 곡선인 것처럼 새들도 직선으로만 날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는 배려와 순리를 따를 줄 안다는 얘기다.
매듭 실을 보자.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실타래를 상대방 양손에 걸어놓고 실을 풀어 감으며 실꾸리를 만들어 간다. 둘이 협력하고 호흡이 잘 맞아야 가능하다. 간혹 얽히게 되는 경우 느슨하게 해 줄수록 잘 풀리지만 잡아당길수록 더 엉키고 그렇다고 매듭을 짜르면 쓸모없어지므로 이 또한 인내와 여유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울지 않는 새와 매듭 풀기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지난 주 트위터(Twitter)에 대항마로 등장한 페이스 북의 모(母)회사 메타(Meta)의 새 SNS 스레드(Threads)의 폭발적인 출발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며 지저귀고 울라고 대화의 장을 열었던 새모양 로고의 트위터. 그 트위터도 언제부턴가 자기과시적 글을 자극적으로 쓰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폭력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가짜뉴스가 환호 받고 정론이 밀려나는 일도 많이 발생했다.
그러자 메타는 잘 풀리는 실 모양 로고의 스레드를 출시하면서 ‘깨끗한 스레드가 되겠다’며 기존 서비스와의 차별화를 내세웠다. 허나 그 성패는 아직 모른다. 새들이나 실매듭이 보여주는 배려와 여유가 없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일터.
아무튼 과연 트위터가 새장바닥에 죽은체 누웠다가 이를 버리려고 새장문을 여는 순간 날아오른 ‘트위트위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될는지, 아니면 새 발목을 실에 묶어 새장에 가두는 스레드가 될는지 두고 볼일이지만 그나저나 두 거물이 근자에 보여준 볼썽사나운 다툼으로 사회적 공론장을 더 왜곡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트위터에는 ‘의미 없는 잡다한 정보’라는 뜻도 숨어있고 스레드 역시 ‘가냘푼 의지’라는 뜻이 내재되어있음을 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