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법률가 베르테르는 무도회에서 만난 로테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약혼자가 있었다. 맺어 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그는 다른 나라로 떠나보지만 그곳에서 귀족들의 폐습만을 경험한 채 실망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로테와 그녀의 약혼자 사이에서 치정 끝에 그녀가 절교를 선언하자 절망에 빠져 권총으로 생을 마감한다.
독일의 대문호 괴태가 쓴 이 소설의 취지는 당대의 인습과 속된 귀족사회에 암담해하던 젊은 지식인의 인식을 그리는 것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우울증을 전염시키고 자살을 전파한다는 오명을 얻었다. 그것은 베르테르를 우상으로 여긴 젊은이들이 그가 입었던 초록색 웃옷과 노란 조끼를 입고 다니는 등 유행에 그치지 않고 그를 따라 하는 모방 자살 또한 잇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유럽 각국에서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발간을 중단하는 조치까지 내리자 이에 당혹한 괴테도 모방 자살을 하지 말라고 호소할 정도였다. 당시 유럽 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였다.
자살하는 이들의 절박한 사정에는 이런 이유 외에도 경제적, 병리학적, 심리적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가와 사회, 그 중에서도 특히 언론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자살 발생이 상승하는 이유 중 하나로 상세한 자살 보도가 한몫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보도가 나간 후 그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살과 관련된 언론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한 보도를 함으로써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는 거다.
해서 오스트리아에서는 언론들이 자살사건의 보도 자제에 동참한 후 자살률이 감소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를 ‘파파게노 효과’라고 한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나왔다. 마술피리의 조연 파파게노는 사랑하는 파파게나가 사라지자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다. 이때 요정들이 들려주는 노래에서 희망을 느끼게 된 그는 자살 대신 종을 울린다. 그러자 파파게나가 다시 나타나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두 연인이 ‘파,파,파,파 …’ 하면서 부르는 이중창 아리아로 유명하다.
다시 말해 자살을 고려하는 사람이 이와 관련된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을 경우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베르테르 효과 대신 파파게노 효과로 자살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거다. 헌데 이러한 언론 보도 자제와 함께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극단적 선택’ 이란 단어다.
그 동안 언론은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고민 끝에 ‘자살’이라는 단어의 대안으로 ‘극단적 선택’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우회적이고 완곡한 표현인 이 말도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의 취지는 퇴색된 채 그냥 동일한 일반어처럼 되어버렸다. 게다가 완곡표현이 자살예방이나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없으며 이미 미국 등 외국에서는 ‘자살’이나 ‘사망’ 등으로 단순 표현하고 있다. (영어 ‘commit suicide’ 에서 ‘commit’을 피하고 died by suicide로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일 한국의 신문윤리위원회가 ‘극단적 선택’ 표현을 제재하기로 했다. ‘선택’이라는 표현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취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란 거다. 그러니 고인이 왜, 어떻게 사망했는지 보다는 고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 지를 통해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더 바른 예의가 아닐는지.
예일대 정신과 나종호 교수는 ‘자살’이라는 중립적 단어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책임’의 시각으로 봐야할 것이며 더 나아가 주변에 홀로 고통스러워하는 파파게노가 없는지 살펴 지켜 주고 마음을 읽어 주라’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