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서 아시안 증오반대 시위 현장에서 찍힌 한 한인 청년의 사진이 누리꾼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난 10일 뉴저지주 저지시티에서 있었던 시위 도중 찍힌 것이었다. 머리에 태극기 두건을 두르고 마스크를 쓴 채 들고 있는 골판지 종이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HALF BLACK HALF KOREAN, SICK OF MARCHING” ‘나는 흑인과 한국인의 혼혈이다. 거리 시위가 이제 지겹다’ 정도로 읽힐 수 있는 짧은 문구이다. 피식하고 지나칠 수 있는 어찌보면 ‘웃픈’ 장면일 수도 있지만 이 남성이 살아왔을 과거와 현재가 떠올라 몹시 가슴을 몹시 아프게 했던 사진이었다.
특히,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시위에서부터 최근의 ‘아시안증오반대’(StopAsianHate) 시위 물결까지 그가 지난 1 간 겪었을 지난한 고통과 좌절, 그리고 밤잠 못 자며 겪었을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고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BLM에서부터 ‘아시안증오 반대’까지 끓어오르는 ‘분노’로 시위 현장을 지켰을 이 청년의 ‘SICK OF MARCHING’이란 한마디는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 갈등의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사회의 모든 갈등의 정점이 인종문제라는 ‘아메리칸 딜레마’에서 아시아계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백인도 아닌, 흑인도 아닌’ 제3의 인종적 지위가 갖는 아시아계의 특수성은 미국사회 갈등 현실에서 아시아계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아시아계는 지난 수백년간 미국에서 흑인이 겪어온 구조적 부당함을 인종적 집단차원에서 경험한 적이 없고, 역사적 불평등에 직접 맞선 기억도 없어 미국인들에게 아시아계는 미국사회 내부로 포섭되지 않는, 외부자로 간주됐다. 치열한 갈등에 발 담그지 않고 한발짝 물러서있을 수 있는 국외자라는 독특한 위상을 만들어냈고, 현실의 갈등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UC 어바인 클레어 진 교수는 최근 CNN에 ‘백인도 아닌, 흑인도 아닌’ 아시아계의 보이지 않는 이 독특함이 아시아계에 유리하게 작동했다고 진단했다.인종갈등에서 비켜난 것처럼 보인 아시아계는 다른 인종에 비해 소득이 높고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크고 경찰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0여년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아시아계가 미국 사회의 차별과 증오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부로 포섭되지 못한, 외부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라는 다른 종류의 증오와 차별이어서 눈에 띠지 않았을 뿐이다. 미국 사회 내부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아시아계는 조직적인 표적이 됐다. 미국 사회 내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외부자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외부자의 위치를 강화시킨 중심에 아시아계에 대한 소위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허상이 자리잡고 있다. 보이지 않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 존재는 언제든 가장 쉬운 표적이 된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이민금지법의 대상이 됐던 1800년대 말 중국인이 그랬고,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인 격리수용, 911이후 증오표적이 된 이슬람 아시아계가 그랬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도 바로 그런 것이다.
아시아계에 모델 마이너리티의 허상을 덧씌운 것은 미국 사회지만 이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것은 아시아계 바로 자신들이다. 모델 마이너리티의 허상은 타자에게는 ‘말 잘듣고 고분고분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아시아계 스스로에게는 ‘백인을 제외한 타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종 서열의 조작된 함정이 된다.
아시아계가 타인종에 비해 부유하다는 인식은 사실 왜곡에 가깝다. 아시아계 빈곤율은 12.6%로 미 전체 평균 12.4%보다 높고, 한인 빈곤율은 13.9%로 이보다 더 높다.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아시아계도 미국사회에서 외부자가 아닌 내부자로서 ‘보이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랜 시간 감춰졌던 아시안 증오와 혐오에 미국사회가 뒤늦게 각성하고 나선 이 시점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아시아계 스스로의 각성이다.
‘모델 마이너리티’의 허상에서 벗어나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불평등, 차별과 증오에 맞서 목소리를 낼 때 보이지 않는 외부자가 아닌 미국 사회의 내부 구성원으로서 비로소 받아 들여질 수 있다.
<김상목 K-News LA 편집인 겸 대표기자>
♠이 글은 2021년 4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이전 칼럼 [김상목 칼럼] 트럼프 성공전략의 비밀, ‘분노와 증오’
이전 칼럼 [김상목 칼럼] 너나 잘하세요
이전 칼럼 [김상목 칼럼] 나무닭 지도자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