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범죄피해를 당해도 하소연조차 못하며, 10년이 넘도록 가족을 보지 못했다. 식당 한 귀퉁이에서, 세차장에서, 땡볕 아래 들녘에서 12시간을 일해도 임금을 떼이기 일쑤지만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1,100만 불법 이민자들이다.
운전면허증도 없고 이민서류도 없어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소리 나지 않게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 보이지 않는 존재 취급을 받으며, 보이는 것조차 꺼려야 하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바로 불법이민자들이다.
미국 사회의 밑바닥 음지에서 보이지 않게 미국 경제를 지탱해 온 이 투명인간들을 위한 세기의 구출작전, ‘포괄 이민개혁’ 논의가 시작됐다.
국경을 몰래 넘거나 비자 기한이 지나고서도 미국을 떠나지 않은 그들이 법을 어긴 불법 이민자임에는 틀림없다. 또, 그들과 달리 정해진 법과 절차를 지키며 그린카드를 받고, 시민권자가 된 합법 이민자들이 훨씬 더 많고, 오랜 시간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이민대기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면서도 미국을 떠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기회가 허용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에게 미국은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유일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미 의회조사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1,100만 불법 이민자들 중 64% 이상이 2000년 이전에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들로 나타났다. 이들 중 700만 명 이상이 14년 이상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으며 20년을 넘긴 이민자만도 400만 명에 달했다. 160만 명은 이미 30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들이었다. 5년이 채 되지 않은 이민자는 9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또, 퓨우 히스패닉 센터의 조사에서는 86%의 불법 이민자들이 2005년 이전에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많게는 30년 넘게 고통 속에 살아온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포괄 이민개혁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지적한 것처럼 이민개혁은 1,100만 불법 이민자들이 음지에서 걸어 나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을 돌려주는 것이다.
이민개혁은 이민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미국 가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법이민자의 자녀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많은 미국 시민들에게 떳떳한 가정을 돌려주는 것이 이민개혁이다.
라티노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1,100만 불법이민자들의 대다수가 멕시코와 중남미계 출신이지만 이민개혁을 숨죽이며 기다리는 한인도 무려 23만 명에 달하고 있다.
거듭된 실패와 좌절 끝에 이제야 이민개혁에 희망이 보이고 있다. 지난한 시간을 거쳐 어렵게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연방 의회와 백악관의 ‘투명인간 구출작전’에 한인 사회도 힘을 보탤 때다.
<김상목 K-News LA 대표기자/편집인>
♠ 이 글은 서류미미 청소년들 구제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13년 1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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