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의 대군(大軍)이 그리스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쳐들어왔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단 300명의 전사와 함께 그 길목 맞은편에 섰다. 양측 군의 숫자로는 어불성설이었으나 스파르타 왕은 아무리 대군이라도 그 협곡으로는 한 번에 몇 명씩 밖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3일을 버티고 쓰러졌지만 그만큼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덕에 이듬해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를 패퇴시키게 되었다. 그 장면을 영화 ‘300’은 서방 문명 대 동방 전제주의의 충돌로 그렸다.
그로부터 2,500년 후,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과 서방의 충돌은 다른 이름으로, 다른 무기로 그러나 같은 구도를 반복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미국과 이란의 악연은 1953년에 시작되었다. 이란 최초의 민주적 총리 모사데크가 영국 석유 회사를 국유화하자, 미 CIA와 영국 MI6정보국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끌어내렸다. 그 결과 친미 왕정이 복위됐고, 이란 유전의 40%가 미국 석유 회사들에 넘어갔다.
그 후 이란인들의 분노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터졌다. 혁명 직후 미 대사관이 점거됐고 52명의 미국인이 444일간 억류됐다. 호메이니는 미국을 ‘대악마(Great Satan)’라 불렀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며 이란군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에 공모했으며 동시에 비밀리에 이란에도 무기를 팔았다. 이른바 이란-콘트라 스캔들이다. 이렇듯 미국과 이란의 악연 70년의 역사는 배신과 역설의 연속이었다.
그 역사의 기운데 1974년 ‘킨샤사의 새벽’이 있다. 새벽 4시 30분. 32세의 무하마드 알리. 상대는 40전 무패, 37KO 전적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 25세. 조 프레이저를 2라운드만에 6번이나 다운시킬만큼 파괴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모든 배팅 전문가들은 포먼의 완승을 점쳤고 다른 이들 역시 알리를 걱정했다. 허나 알리만은 태연했다. 경기 전날 밤, 알리는 트레이너와 논의 끝에 단순한 전략을 세웠다. ‘맞아줘라. 지치게 해라. 그리고 쓰러뜨려라.’ 나비같이 나르는 발놀림으로 포먼을 상대하기에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젊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가 농담처럼 말했다. ‘로프에 기대어 바보처럼 버텨봐요.’ 그러자 알리는 ‘내가 ‘로프어도프(Rope-a-Dope)’가 되라는 건가?’
2라운드부터 알리는 로프에 기댔다. 포먼의 연타가 쏟아졌지만 로프가 그 충격을 흡수했고 5라운드에 이르자 지친 포먼의 주먹이 느려졌다. 드디어 8라운드, 알리가 로프를 벗어났다. 그리고 왼손 어퍼컷에 오른손 훅 하나. 포먼은 링 바닥에 쓰러졌다.
반세기가 흐른 지난 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 대공습이 시작됐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와 수뇌부가 사망하고, 핵 시설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란은 바로 쓰러지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다. 수백 발의 미사일과 드론이 페르시아 만 전역으로 쏟아졌다. 그러자 분쟁분석가들은 ‘이란이 로프어도프(Rope-a-Dope)’를 구사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란은 대규모 집중 보복 대신, 작은 미사일과 드론을 사방으로 얇게 뿌렸다. 파괴력보다 소진을 노린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동맹국의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 재고는 하루하루 줄어들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국제 유가도 흔들리고 있다.
분쟁 분석기관(ACLED)은 ‘이란이 항복보다 계속 싸우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쟁의 궤도는 워싱턴의 예상보다 훨씬 길고 예측 불가능하게 흐를 수 있다’고 평했다.
‘맞으면서 버티면서, 상대의 8라운드가 오기를 기다리는 전략’일까? 2,500년 전 테르모필레의 협곡에서, 1974년 킨샤사의 링에서, 그리고 지금 페르시아 만의 전장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모양새다.
강자가 모든 것을 쏟아붓는 동안, 약자가 할수 있는 것 하나. 버티는 것.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마지막에 서 있는 자의 것. 이번엔 과연 누구일는지?
알리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너무 일찍 자리를 뜨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순간에만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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