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보(A. Rimbaud)는19세기 프랑스 문학의 질서를 뒤흔들었던 반항아였다. 그는 17살 무렵부터 놀라운 시를 썼고, 기존의 아름다움이나 도덕, 언어의 규칙을 믿지 않았다. 그에게 시는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만들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험이었다.
헌데 시보다 더 극적인 것은 그의 삶이었다. 격정적인 사랑과 갈등을 겪었고, 스무 살 무렵에는 사실상 시를 그만두었다. 훗날 아프리카로 건너가 상업에 종사하면서 한때 문단을 뒤흔들었던 자신의 문학적 삶과 거리를 두었다.
그 격정적인 시절에 또 한 사람의 시인이 있었다. 폴 베를렌(Paul Verlaine). 랭보보다 열 살가량 많았던 그는 이 젊은 시인의 재능에 매료되어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사랑과 질투, 술과 다툼이 격렬하게 뒤엉킨 끝에 베를렌이 권총으로 랭보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베를렌을 떠올리면 한 편의 시가 따라온다. ‘가을날 바이올린의 길고 긴 흐느낌이…’로 시작하는 ‘가을의 노래(Chanson d’automne)’가 그것이다. 그 가을의 바이올린은 시인의 마음을 우수로 물들이고 화자는 바람에 휩쓸리는 낙엽처럼 기억과 슬픔에 떠밀려 간다.
랭보의 시가 기존 세계를 깨뜨리려는 젊은 에너지라면, 베를렌의 시에는 그 파괴 이후에 찾아오는 쓸쓸함과 흔들림이 있다. 한 사람은 반항의 불꽃을, 다른 한 사람은 그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서늘한 울림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 시는 훗날 다른 일도 했다. 2차세계대전 당시 BBC 라디오가 이 시의 첫구절을 암호로 내보냈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에게 연합군 상륙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두 사람의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초록빛 때문에 ‘초록 요정’이란 별명이 붙은 강한 술, ‘압생트(Absinthe)’. 19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와 시인들 사이에서 보헤미안적 삶과 예술적 자유를 상징했던 술. 랭보와 베를렌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시를 떠난 랭보. 헌데 그의 문장이 다시 프랑스 거리로 불려나왔다. 랭보가 17살 때 쓴 시 ‘로망’의 첫 문장, ‘열일곱 살엔 진지할 수 없다’. 156년이 지난 지금 같은 나이의 학생들이 이 문장을 바꿔 쓴 피켓을 들고 최루가스가 자욱한 프랑스 거리에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열일곱 살일 때도 진지하다’.
학생들은 왜 랭보를 불러낸 것일까? 그들이 압생트를 마시거나 19세기 시인들의 삶을 그대로 되풀이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말하려는 것은 술이나 스캔들이 아니라, 젊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목소리가 가볍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외침일 것이다.
베를렌의 바이올린이 내는 흐느낌은 여전히 들리지만 오늘 프랑스 거리에서 울리는 소리는 슬픔만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침묵하지 않겠다는 목소리다.
150여 년 전, 17 살의 랭보가 문학의 관습과 기성세대의 권위에 도전했다면, 오늘의 프랑스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와 미래를 둘러싼 암울한 현실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선 것이다. 교사 부족, 과밀 학급, 낡은 학교 시설, 불안한 미래. 시대는 달라도 젊은이들의 질문은 닮아 있다.
이는 60년 전 한 사건을 떠 올리게도 한다. 1968년 5월, 낭테르대에서 시작해 소르본 대학으로 번진 학생들의 저항은 프랑스 사회 전체를 뒤흔든 68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역사를 떠올린다면, 오늘 열일곱 살 학생들의 외침을 단순한 소요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랭보의 시, 그 정신을 교실 밖, 현실로 가져나온 학생들. 그러고 보면 랭보가 열일곱 살에 던졌던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젊음은 언제나 미숙하기만 한 것일까? 아니면 어른들이 미처 듣지 못한 진실을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시간일까?
랭보의 말처럼 열일곱은 진지하지 않아도 된다. 허나 열일곱을 대하는 어른들은 진지해야 한다. 가을의 바이올린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누가 그 신호를 읽어낼 것인가?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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