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이탈리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흔들기와 지정학적 불안 속 자국의 금 보유고를 뉴욕에서 유럽으로 옮겨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23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세 번째로 큰 금 보유국들로, 각각 3352톤과 2452톤을 보유 중이다. 이들 국가는 뉴욕이 세계 주요 금 거래 중심지인 만큼 금의 상당 부분을 뉴욕 연준에 보관 중이다. 두 나라가 미국에 보관 중인 금의 시장 가치는 약 2450억 달러(약 338조2200억원)에 달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불안정한 정책 결정과 지정학적 긴장 고조로 유럽 내에선 금 보유고를 유럽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제롬 파월 의장을 비난하는 등 연준의 독립성을 흔들자 금 보유고를 유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독일의 보수 성향 전 국회의원 페터 가우바일러는 “독일은행은 금 보관 시 절대 절차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며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한 만큼 과거보다 더 안전하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유럽납세자협회(TAE)는 독일과 이탈리아 재무부, 중앙은행에 연준에 대한 금 보관 의존도를 재고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협회장 마이클 예거는 “트럼프가 연준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며 “금이 언제든지 유럽 중앙은행의 완전한 통제하에 있도록 금을 본국으로 가져올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유럽 중앙은행들이 연준에 금을 보관하는 것은 오랜 논란거리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년간 경제 호황과 대미 무역 흑자에 힘입어 서유럽 국가들은 대규모 금 보유고를 축적했다. 1971년까지 달러를 금과 연동시키는 고정환율 제도인 브레튼우즈 체제 아래 연준에서 금으로 교환됐다. 이는 소련과의 전쟁 위험에 대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신뢰하지 않았고, 금의 대부분을 파리로 되찾아왔다.
독일은 2010년 ‘금 본국 환수’ 운동이 일면서 2013년 파리와 뉴욕에서 674톤의 금을 프랑크푸르트 본부로 옮겼다. 현재 독일이 보유한 금의 37%가 뉴욕에 보관 중이다.
이탈리아에서도 극우 정당을 중심으로 2019년 금 환수가 추진됐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움직임은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