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야만 아이돌 좋아할 수 있나요”…비대면 ‘덕질’에 수백 쓴다
20대 대학생 A씨는 좋아하는 아이돌과 1대1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모은 돈 250만원을 앨범 구매에 털어 넣었다. 영상통화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투자였지만, 당첨자 목록에 A씨는 없었다.
앨범 100여장만 떠안게 된 A씨는 “비대면으로 팬 사인회를 진행하면서 ‘커트라인’이 더 높아졌다”고 한탄했다.
디지털 플랫폼 다양화 흐름에 코로나19 유행까지 길어지면서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 대다수를 비대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대면 행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불가피한 변화라고 주장하지만, 팬들의 금전적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지난 2020년 상반기를 기점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비대면 이벤트가 본격화됐다. 이전에도 방탄소년단(BTS)의 국내 콘서트를 전 세계에 유료 스트리밍하는 등 비대면 서비스는 있었지만, 같은 해 3월 이후 이런 경향이 더욱더 짙어졌다.
A씨 사례와 같은 ‘영상통화 팬 사인회(영통팬싸)’는 대면 팬 사인회 및 팬 미팅을 온라인으로 옮긴 것으로, 특정 플랫폼에서 2~3분 내로 팬과 스타가 1대1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이벤트다. 앨범을 구매할 때마다 팬 사인회 응모권이 한 장씩 생긴다.
연예인과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도 등장했다. ‘디어유 버블(DearU Bubble)’은 한 달에 4500원을 내면 스타 1명과 매칭을 시켜주는데, 100% 스타에게 답장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슷한 플랫폼 ‘포켓돌스’는 스타에게 메시지를 한 번 보낼 때마다 약 2500원을 내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오프라인 행사 개최가 어렵다 보니 새로운 수익 창출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팬들과 소통하는 비대면 행사로 수익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중소 기획사나 신인들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 비대면을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팬들은 유료 이벤트가 급증하면서 과거보다 ‘덕질’에 드는 돈이 지나치게 늘어났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20대 아이돌 팬 정모씨는 “예전엔 굳이 큰 소비를 하지 않아도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개방송, 행사 등이 많았는데 이젠 돈을 내야만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다”며 “공식 카페 등을 통해 이뤄지던 아티스트와의 소통도 유료로 하는 게 당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연예 기획사가 앨범 발매 전 ‘미발매곡 공개 기념 비대면 팬 사인회’를 열며 “추후에 발매될 앨범을 미리 구매하라”는 일도 있었다.
정씨는 “상품도 사람이고 소비자도 사람인데 과한 마케팅을 보면 힘이 빠진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불 비용은 늘어났지만 만족감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플랫폼에 따라 송출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구매를 했음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상을 소장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20대 아이돌 팬 B씨는 “사도 사도 허상을 사는 것 같고 즉각적인 소비가 와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흐름을 피할 수는 없지만 지나친 상업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획사의 비즈니스화 시도에 팬들이 반발하며 갈등이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팬덤 분위기는 과거처럼 맹목적이지 않은 만큼 견제와 합리적 소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연예 기획사가 무리하게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아이돌 브랜드 가치가 오히려 안 좋아질 수 있다”며 “과중한 단가 책정 등은 시정돼야 한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