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콘텐츠가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는가. 세계적 열풍이 거센 K-팝뿐만 아니라 I(인도네시아)-팝, T(태국)-팝 등도 각광을 받는 모양새다.
지난달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인디오의 사막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펼쳐진 현지 최대 규모의 야외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내 열기가 아시안 뮤지션의 힘을 증명했다.
미국을 기반으로 현지에 다양한 아시안 아티스트를 소개해온 레이블 ’88라이징(88rising)’이 지난 4월 16일(이하 현지시간)과 23일 각각 기획한 메인 스테이지의 앙상블 무대 ‘헤드 인 더 클라우드 포에버(Head In The Clouds Forever)’가 그것.
이 무대에 아시안 뮤지션들이 대거 올랐다. 1999년부터 이어져 매년 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으는 이 페스티벌에서 레이블이 메인 스테이지의 기획 무대를 선보인 건 이례적이다.
한국의 힙합가수 윤미래·R&B 가수 비비(BIBI), K팝 걸그룹 ‘투애니원(2NE1)’ 출신 씨엘(CL)을 비롯 갓세븐(GOT7) 출신 홍콩계 중국인 잭슨 왕(Jackson Wang), 일본의 국민가수 우타다 히카루(HIKARU UTADA), 인도네시아 출신의 글로벌 스타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 니키(NIKI), 그리고 신예 래퍼 워렌 휴(Warren Hue), 태국 아티스트 밀리(MILLI) 등이 공연했다.
특히 16일엔 2NE1이 씨엘 주도로 6년4개월 만에 완전체 무대를 꾸며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23일엔 4세대 K팝 간판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메인 스테이지에 K팝 걸그룹 최초로 공식 초청받아 무대를 장식했다.
88라이징은 지난해 마블 스튜디오의 첫 아시안 히어로물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OST 프로듀싱을 맡아 이미 역량을 입증했다. 아시안 문화와 정체성을 녹여낸 영화의 특성에 맞게 힙합 크루 ‘DPR’ 라이브와 이안, 싱어송라이터 서리(Seori), 비비, 갓세븐 출신 중국계 미국인 마크 등 K팝 스타를 비롯 아시안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 같은 해 5월엔 아시아계 증오 범죄 피해자를 돕기 위해 온라인 자선 콘서트 ‘아시아 라이징 투게더’를 열기도 했다.
88라이징의 션 미야시로 대표는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를 두고 아시안 정체성을 지켜온 인물. 태생은 비주류가 아니며, 문화적 힘은 아티스트 본령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을 근원적 기질로 증명해나가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 ‘미나리’, 애플 TV 플러스(+)의 ‘파친코’ 등 지역을 다루지만 문화적 소통엔 국적이 없다는 걸 증명한 콘텐츠들처럼 88라이징 역시 음악을 넘어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다음은 88라이징의 한국총괄을 맡고 있는 양승진 부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번 코첼라 기획 무대는 참 멋졌습니다. 어떻게 성사된 건가요?
“88라이징이 연간 행사로 진행하는 ‘헤드 인 더 클라우드(Head in the Clouds)’라는 페스티벌을 접한 코첼라 창업자 폴 톨렛(Paul Tollett)의 제안으로 성사됐어요. 무엇보다 세계적인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레이블로서 최초로 무대를 꾸미고 우리만의 문화를 보여줬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 무대 타이틀을 ‘헤드 인 더 클라우드 포에버’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88라이징의 프로젝트 앨범명이기도 하죠. 그런데 ‘뜬구름을 잡다’ 등 비교적 부정적인 관용구로 사용되는 걸로 알도 있습니다. 하지만 88라이징 덕분에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멋진 문구가 된 거 같습니다.
“‘헤드 인 더 클라우드’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페스티벌 지식재산권(IP)이에요. 처음부터 저희 페스티벌의 일부를 코첼라에서 보여주자는 취지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를 접하게 되는 온오프라인의 많은 이들이 저희 무대를 오랫동안 기억해 주기를 바랐어요. 반대로 저희도 기적 같은 기회에 대한 감사함과 겸손함을 평생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또 우리가 해온 음악 업계의 선배들과 저희의 세대 또 그 다음 세대에서도 이와 같은 무브먼트가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포에버’라는 타이틀을 정했습니다.”
-씨엘(2NE1), 에스파를 포함 윤미래&비비 씨 같은 한국 뮤지션뿐만 아니라 아시안 뮤지션 라인업도 일품이었습니다. 이번에 아시아 각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 참여했는데 라인업 구성에 어떤 점들을 고려했나요?
“88은 일반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닙니다. 88의 채널이나 콘텐츠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속 아티스트만 프로모션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희 회사·임직원들이 사랑하는 친구 아티스트들, 우리 소속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뮤지션, 그리고 우리가 속한 문화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화를 저희의 플랫폼을 통해서 늘 알리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기회가 필요한 이들에게 디딤돌 역을 하기 위해 노력하죠. 코첼라 무대 라인업 또한 이러한 부분들이 많이 작용했어요. 유명한 아티스트가 아니지만 저희가 좋아하고, 대중들이 알았으면 하는 아티스트들을 찾았죠. 또 무대 앞을 채울 아티스트 선별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전 세계에서 코첼라 무대를 스트리밍할 다양한 연령층 및 관객들이 함께 즐기고 또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라인업을 구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태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10대 래퍼 밀리가 코첼라 무대 위에서 태국 디저트 ‘망고 스티키 라이스’를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는 등 문화적으로도 아시아의 영향력을 끼친 공연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어떻게 보시고 세계적으로 음악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가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시나요?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메이저 플랫폼·매체 등을 통해서 보다 다양한 문화들이 소개되고, 대중들의 반응을 보다 쉽게 접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도례한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88라이징은 아시아계 문화적 정체성을 적극 활용합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혹시 조심하는 부분이 있나요? ‘너무 오리엔털리즘으로 빠지지 않는다’처럼 지키고자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저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취지가 다양한 문화나 배경으로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요. 88의 의미는 ‘더블 해피니스(Double Happiness)’입니다. 저희가 하는 것들이 아티스트에게, 저희에게 그리고 대중에게도 행복을 선사할 수 있기 위해서 고민합니다. 늘 우리다움만으로 편견과 상관없이 대중의 마음에 기쁨을 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공통적인 음악 화두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아무래도 메타버스, NFT 등 기술적인 측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회사들이 많은 거 같은데 88라이징도 그런 측면에서 준비하는 부분이 있나요?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술이 발전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미디어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거나 도전하는데는 거리낌이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가진 고유의 전통의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매년 저희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새로움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입니다.”
-무엇보다 88라이징은 음악적으로 문화적으로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는 레이블입니다. 88라이징이 생각하는 진정한 다양성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그저 저희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가장 우리스럽게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다양하게 또 어떤 이들에게는 편파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88을 나무에 비교해볼까요? 매년 감사하게 다양한 열매들이 열리고 있는데, 아직도 뿌리를 내리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단단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 뿌리 내리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아마 해가 갈수록 뿌리가 깊어지고, 또 나무가 성장할수록 다양한 열매들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갈지 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은 북극성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