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BLACKPINK)’가 K팝 걸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25일 빌보드 차트 예고 기사에 따르면, 블랙핑크가 지난 16일 발매한 정규 2집 ‘본 핑크(BORN PINK)’는 10만 2000장 상당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해 2008년 4월5일 자에서 미국 그룹 ‘대니티 케인(Danity Kane)’이 ‘웰컴 투 더 돌하우스’로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14년5개월 만에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한 걸그룹이 됐다.
K팝 가수가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른 것은 방탄소년단, 슈퍼엠, 스트레이 키즈에 이어 블랙핑크가 네 번째다. 미국 빌보드와 함께 세계 양대 팝 차트로 통하는 영국 오피셜 앨범차트까지 함께 거머쥔 건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뿐이다. 특히 블랙핑크는 아시아 여성 가수 중 처음으로 미국·영국 메인 앨범 차트를 동시에 휩쓸었다.
한국 걸그룹이 K팝 걸그룹을 넘어 K팝 최초의 기록으로 글로벌 음악 시장을 흔드는 가운데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 포스트(WP) 등 미국 주요 외신이 K팝을 조명했던 기사들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NYT, 지난 22일 블랙핑크 등 K팝 걸그룹 호평
블랙핑크가 K팝 걸그룹 최초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하기 사흘 전인 22일 NYT는 ‘블랙핑크와 K팝 맥시멀리즘의 한계(Blackpink and the Limits of K-Pop Maximalism)’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 K팝 글로벌 진출 역사와 K팝 걸그룹을 대해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K팝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초반 글로벌 진출 야망을 키우며 ‘지구상에서 가장 배고픈 팝 현장’이 됐다. 특히 K팝은 미국의 팝, 힙합, R&B, 댄스 음악을 즐겨 쓰며 최대치의 곡을 만들어냈고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대중적인 접근이 된 ‘과잉의 미학(aesthetic of absurdist excess)’을 창조했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 시기 데뷔한 걸그룹 ‘투애니원(2NE1)’이 먼저 인기를 모았고 세계를 장악하는 무대를 마련하는 초석이 됐다.
뒤이어 2016년 데뷔한 YG 차세대 걸그룹 블랙핑크는 ‘휘파람’, ‘뚜두뚜두(DDU-DU DDU-DU)’,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과 같은 싱글 앨범을 초기에 성공시키며 K팝 진출의 횃불을 이어 받았다.
NYT는 이번 블랙핑크 정규 2집 ‘본 핑크(BORN PINK)’에 대해 그룹과 장르 자체를 모두 혁신할 기회였다고 봤다. 선공개곡 ‘핑크 베놈(Pink Venom)’에서 “지수의 노래는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소박하며 제니의 랩엔 유연하고 영리한 선조가 심어져있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소녀시대, 에스파(aespa), 있지(ITZY), 뉴진스(NewJeans)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지난달 데뷔 15년을 맞이한 소녀시대의 정규 7집 ‘포에버 원’에 대해서는 “그 장르가 덜 불안했던 시간으로의 상쾌한 복고”라며 “연출은 대체로 감미롭고 밝으며 복잡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소녀시대도 블랙핑크와의 비교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10년 전 소녀시대는 미국 주요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매한 최초의 케이팝 가수 중 하나였지만 그 야망은 블랙핑크의 야망처럼 끈질기지 않았다”고 NYT는 지적했다.
에스파에 대해서는 지난 7월 발매된 에스파의 미니 2집 ‘걸스(Girls)’가 “복잡함과 우아함을 이중으로 섭렵한 올해의 가장 인상적인 케이팝 발매 중 하나”라고 호평했고, 있지(ITZY)가 최근 발매한 미니 5집 ‘체크메이트(CHECKMATE)’에 대해서는 “강렬한 보컬과 끓어오르는 듯한 프로덕션으로 활기가 넘친다”고 분석했다.
NYT는 민희진 대표이사가 이끄는 레이블 어도어(ADOR) 소속의 신인 걸그룹 뉴진스를 ‘가장 유망한 그룹’으로 꼽았다. 뉴진스의 데뷔 EP를 두고 “가장 유망한 그룹은 뉴진스”라며, “표면적으로 뉴진스는 투애니원 이전 케이팝을 떠오르게 하지만, 수면 아래 있는 레퍼런스들은 상당히 현대적”이라고 평했다.
◇WP, K팝 히트 원인 분석…기억하기 쉬운 반복적인 가사와 안무, 조직적인 팬덤
지난해 7월 WP는 K팝의 인기 요인을 분석한 기획 기사를 내기도 했다. ‘K팝은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나(How K-POP conquered the universe)’라는 기사는 다채로운 그래픽 및 오디오와 곁들여져 홈페이지 첫 화면에 크게 배치됐다.
WP는 K팝의 성공과 인기 요인은 뇌리에 각인되는 노래와 포인트 안무, 현란한 뮤직비디오가 소셜미디어에 최적화된 데다 팬덤의 열성적인 활동 문화 등이 합쳐진 결과라고 분석했다.
WP가 K팝의 세계적 인기 이유로 꼽은 첫 번째는 특정 선율이 반복되며 뇌리에 각인되는 ‘후크송’의 요소다. 2007년 발매 당시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한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와 2009년 슈퍼주니어가 발매한 인기곡 ‘쏘리 쏘리(Sorry sorry)’를 예시로 거론했다.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교수는 특정 부분의 반복을 통해 귀에 쏙 들어오는 후크송은 케이팝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형이라고 전했다.
또한 WP는 K팝에 포인트 안무가 포함돼 팬들이 이를 따라 하며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으며 소녀시대의 ‘지(Gee)’에 등장하는 게 춤이나 EXID의 ‘업앤다운’ 춤과 같은 포인트 댄스 동작을 예로 들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등 그룹과 함께 작업한 안무가 리아킴은 “레이블사가 기억에 남고 따라하기 쉬운 안무을 특별히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을 내려놓고 노래와 앨범을 유튜브에 올리는 마케팅 전략도 인기에 한 몫 했다. K팝 레이블의 마케팅 전략 중 하나는 저작권을 포기하고 노래와 앨범을 출시해 유튜브에서 스트리밍하는 동시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실제 2012년 싸이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수 10억뷰를 돌파한 최초 영상으로, 유튜브와 트위터라는 두 개의 대형 소셜 플랫폼을 통해 노출돼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트위터와 같은 SNS플랫폼이 새로운 팬덤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도 WP가 분석한 K팝의 인기 요인이다. 김연정 트위터 글로벌 케이팝 및 한국콘텐츠 파트너십 총괄은 “트위터는 ‘K팝의 성지'”라고 평하며 “(트위터를 이용한 소통은) 아티스트가 팬과 소통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팬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방탄소년단은 정식 데뷔 전부터 트위터를 시작했고, SNS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 이 접근 방식은 2012년 당시엔 획기적이었으나 이젠 새로운 아이돌들의 성공 공식이 됐다.
K팝의 세계적 인기엔 팬덤의 열성적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이 가면서 K팝 팬들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아이돌 그룹 이미지 형성에 적극 힘을 보태며 강력한 팬덤으로 진화했다고 WP는 분석했다. K팝 영향력을 분석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이비드킴은 “K팝 팬은 인터넷에서 가장 크고 조직적이며 빠른 그룹 중 하나”라며 “공통의 목표가 있을 때 목표 달성 때까지 화력을 집중한다”고 말했다. 저스틴 비버, 브리트니 스피어스 등과 작업했던 K팝 안무가 카일 하나가미도 “케이팝 팬은 내가 살면서 본 어떤 것과도 다르다”며 “그들은 전 세계에서 서로를 찾는다”며 국경을 넘은 팬덤의 적극적 활동을 강조했다.
WP에 따르면 K팝 팬의 힘은 음악 산업을 넘어 정치권력이나 구매력 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2020년 5월 조지 플로이드 살해 이후 다양한 팬덤이 모여 도움을 줬는데, 블랙핑크 팬들은 레이디 가가와 함께한 블랙핑크의 신곡 ‘사워 캔디(Sour Candy)’ 대신 ‘BlackLivesMatter’을 해시태그해 홍보했다. 비슷한 시기 방탄소년단(BTS) 팬덤 아미는 ‘BlackLivesMatter’ 및 ‘NAACP(미국의 흑인 인권단체)’과 같은 조직을 위해 1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