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은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비틀스’가 선봉이 돼 영국 밴드가 북미 음악시장을 장악한 ‘브리티시 인베이전’과 비교되는 ‘K팝 인베이전’의 주역.
’21세기 비틀스’로 통하는 이 팀은 K팝 아이돌의 미학적 성취를 통해 세계 주류 음악 시장의 공인을 이끌어낸 동시에 음악 산업에 대한 열등감을 덜어줬다. 오는 13일 데뷔 10주년을 맞는 이 팀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힙합 아이돌로 출발
방탄소년단은 근래 주로 팝 댄스 풍의 곡을 선보였지만 2013년 6월13일 데뷔(첫 싱글 ‘투 쿨 포 스쿨(2 COOL 4 SKOOL)’ 발매일과 첫 쇼케이날은 2013년 6월12일이지만 첫 무대를 선보인 6월13일을 데뷔일로 한다)한 이후 초창기 정체성은 힙합이었다. 특히 리더 RM은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하기 전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대남협'(대남조선힙합협동조합)에 속해 있었다. 방시혁 하이브(HYBE) 의장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시절 RM을 주축으로 한 힙합 그룹을 구상했다. 슈가 역시 고향인 대구를 기반 삼은 힙합크루 ‘디 타운(D Town)’에서 ‘글로스(Gloss)’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 어거스트 디라는 슈가의 솔로 활동명은 슈가가 예전에 가사로 썼던 ‘DT 슈가(Suga)’를 거꾸로 배열한 것이다.
방탄소년단과 꾸준히 작업해온 하이브 산하 빅히트 뮤직의 피독(강효원) 수석 프로듀서 역시 힙합에 대한 애정을 표해왔다. 피독이라는 활동명도 프로듀서(Producer)와 미국 힙합 거물 스눕독(SnoopDogg)의 ‘독(Dogg)’을 합쳐 만들었다.
피독과 RM·슈가 그리고 제이홉이 가사 작업에 참여한 방탄소년단 정규 1집 ‘다크&와일드(DARK&WILD)'(2014) 수록곡 ‘힙합성애자'(Hip Hop Phile)는 제이-지(Jay-Z), 나스(Nas) 등 힙합 거물은 물론 “클래식한 일매틱(Illmatic)과 ‘도기스타일(Doggystyle)”도 언급돼 있다. ‘일매틱’은 나스의 데뷔음반이자 힙합계의 전설적인 명반 제목이다. ‘도기스타일’은 미국 힙합 거물 스눕독의 데뷔 음반(1993) 제목이다.
힙합계의 전설과 명반들을 연달아 언급한 ‘힙합성애자’는 데뷔 초창기 힙합 아이돌 그룹을 표방한 방탄소년단과 이들을 프로듀싱한 피독의 힙합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곡으로 평가 받는다.
2014년 미국에서 본토 힙합을 배우겠다며 현지로 떠난 방탄소년단의 여행기를 다룬 엠넷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아메리칸 허슬 라이프’가 현지에서 팬덤을 형성하는 데 크게 일조하기도 했다. 하이브가 올해 미국 유력 힙합 레이블 ‘QC 미디어 홀딩스(QC Media Holdings)’를 인수한 건 역사적인 맥락이 있는 셈이다.
이후 방탄소년단의 분기점이 된 건 ‘화양연화’ 시리즈. 2015년 4월 발매한 미니 3집 ‘화양연화’ 파트1의 타이틀곡 ‘아이 니드 유’로 국내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첫 1위를 차지했다. 같은 해 11월 발매한 미니 4집 ‘화양연화’ 파트2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171위를 차지하며 SM·YG엔터테인먼트 소속이 아닌 K팝 팀으로는 처음 해당 차트에 진입하는 기록을 썼다. 이후 모두가 알다시피 방탄소년단은 K팝을 넘어 빌보드에서 새 역사를 썼다.
‘빌보드 200’ 정상에 6개의 앨범을 자리하게 했고,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6곡(지민 솔로곡 ‘라이크 크레이지’ 포함하면 7곡)을 올렸다. 두 차트에서 모두 K팝 가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특히 ‘핫100’ 1위는 지금까지 K팝 팀 중 유일하다.
특히 방탄소년단은 2018년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로 처음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한 이후 2020년 11월까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 ‘맵 오브 더 솔 : 페르소나’ ‘맵 오브 더 솔 : 7’ ‘BE’로 연거푸 정상을 차지했다. 2년6개월 만에 앨범 5장을 연이어 빌보드 200 정상에 올린 기록은 비틀스(2년5개월) 이래 최단기간이다. 방탄소년단이 21세기 비틀스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방탄소년단은 미국 최대 대중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에 3년 연속 노미네이트됐고, 현지 주요 대중음악 시상식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5년 연속 수상했다.
◆K팝 세계관 시대 기폭제…대중문화를 ‘파인아트’ 경지로
방탄소년단의 또 다른 특이점은 대중문화를 파인 아트(fine art·순수미술)의 경지까지 끌어 올려 이 분야와 협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 있다.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K팝계에 본격적으로 도래하게 된 세계관이 밑바탕이 됐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방시혁 의장이 ‘작가주의 이미지’로 지적이고 자율적인 이미지도 부여했다. 대표적인 예가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다. “피에타, 데미안 등 대중음악의 맥락을 벗어난 ‘파인 아트’를 대거 끌어들인, 6분 4초에 이르는 단편 영화급 뮤직비디오를 통해 미학도이자 철학도인 방시혁 의장이 오랫동안 추구한 미학적 성장 서사의 세계를 압축해 보여줬고 이에 따라 방탄소년단은 뭔가 다른 아이돌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K팝 전문가인 유니림(Yuni Lim) 대중음악 칼럼니스트)한 계기가 됐다.
세계관은 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실천·정서적 측면을 아우르는 세계 파악을 목적으로 한다. 철학 용어이던 세계관은 게임, 영화 등으로 넘어오면서 시나리오의 근간을 이루는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을 가리키게 됐다. 캐릭터부터 전반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 ‘다크 유니버스’ 등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 스튜디오들도 이런 세계관을 구축했다.
방탄소년단은 이 세계관으로 K팝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 유어셀프’ ‘맵 오브 더 솔’ 시리즈 등 앨범을 낼 때마다 연작 형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형성한 뒤 한 세계관을 만들고 팬들을 끌어들였다. 이런 공감대는 세계적인 팬덤 ‘아미’의 공고함으로 이어졌다.
이 세계관은 ‘방탄소년단 유니버스'(BU)로 불린다. 이 BU를 바탕으로 현대미술과 협업했고 이런 색다른 조우를 통해 자신들의 철학과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했다. 미술 애호가인 RM은 지난해 말 미국 미술 전문매체가 선정한 미술계 혁신가 35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되기도 했다.
2020년 정규 4집 ‘맵 오브 더 솔 : 7(MAP OF THE SOUL : 7)’ 선공개 곡인 ‘블랙 스완’을 통해선 슬로베니아 현대무용팀인 ‘엠엔 댄스 컴퍼니(MN Dance Company)’와 협업해 ‘아트 필름'(Art Film performed by MN Dance Company)을 선보이기도 했다. 멤버들 대신 무용단 단원들이 아트 필름에 등장해 ‘블랙 스완’을 재해석했다. 순수무용의 움직임과 정신적인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방탄소년단의 태도가 높게 평가 받았다.
조혜림 PRIZM 음악콘텐츠 기획자는 “메인스트림과 언더 힙합의 가교가 되고자 데뷔한 방탄소년단은 학교에 갇힌 10대 소년만의 두려움, 삶과 사랑, 그리고 패기에 대해 노래를 시작했다”면서 “그 후 청춘이란 빛에 가려진 불안을 향한 공감의 메시지가 담긴 ‘화양연화’ 시리즈, 진정한 행복의 성찰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서 빛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어느덧 성공을 이뤘지만 이제 또다시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맵 오브 더 솔’ 시리즈를 거치며 자신들의 길을 솔직하게 기록해왔다”고 읽었다.
◆UN·백악관 연설 통한 선한 영향력…사회적 책임 고민도
또 방탄소년단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 ‘선한 영향력’이다. UN연설에서 인종·국경을 넘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만남에선 아시아계를 상대로 한 북미 증오 범죄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 덕분에 방탄소년단은 ‘K팝 외교관’ ‘글로벌 리더’라는 수식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행보가 한창 음악을 즐겨 할 나이인 20대에게 버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RM은 지난해 말 미국 유명 음악잡지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사회적 행보를 자신들이 책임질 수 있는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시안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됐다. 나 스스로 ‘과연 난 좋은 사람인가? 이 모든 책임을 질 자격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겼다”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10주년을 기념한 회고록 ‘비욘드 더 스토리(Beyond The Story): BTS의 10년 기록’을 아미의 생일인 7월9일에 한국과 미국 등지에 동시 발간할 예정인데, 여기에 관련 이야기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더 대단한 점은 이런 부담감 속에서도 한발 한발 계속 전진했다는 것이다. 특히 3년간 전 세계를 괴롭힌 팬데믹 기간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발표한 영어 노래들인, 이른바 희망 3부작 ‘다이너마이트’ ‘버터’ ‘퍼미션 투 댄스’가 그 증명이다. 조혜림 기획자는 “방탄소년단은 이 곡들로 세상 모두를 위로하고 우리의 세상은 모두가 함께하기에 존재하고 이뤄짐을 이야기했다. 청춘의 아픔, 유혹과 절망 속에서 성장하고 자신을 찾아가던 그들은 이제 세계의 희망을 기원하고 전하는 존재로 성장했다”고 들었다.
◆순차적인 군복무, 챕터2 시작…아미와 멤버들의 ‘테이크 투’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작년 말 진과 올해 4월 제이홉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입대한 뒤 약 3년의 단체 활동 공백을 가지고 2025년에 다시 완전체 활동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
멤버들이 모두 군복무를 끝내면, 장수 그룹의 발판을 다지게 된다. 국방의 의무를 지고 나면 팬덤 아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명실상부 국민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이그룹들이 군대를 다녀오면 예년 만큼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선례가 됐지만 세계적으로 위상을 자랑하는 방탄소년단은 충분히 다른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다. 미국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국민가수 나훈아·남진이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인기를 이어간 선례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지난해 10월 부산콘서트에서 30, 40년 더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군 입대로 인한 공백을 당연히 거쳐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또 다른 앞날을 기약한 것이다. 아미들도 충성도를 충분히 보여줬다. 애초 진과 제이홉의 입소 현장에 팬들이 대거 몰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멤버들과 소속사 빅히트 뮤직이 안전과 다른 장병들을 위해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자 이를 따르는 ‘성숙한 팬문화’를 보여줬다.
방탄소년단은 오는 9일 10주년을 기념한 신곡 ‘테이크 투(Take Two)’를 발매한다. 지난해 6월 발표한 앤솔러지 음반 ‘프루프’에 실렸던 ‘옛 투 컴’ 이후 팀 신곡은 1년 만이다. 아미를 위한 팬송이자, 방탄소년단 챕터2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방탄소년단은 제이홉을 시작으로 진, RM, 지민, 슈가를 거쳐 솔로 활동을 준비 중인 정국과 뷔까지 챕터2를 위해 개별적으로 역량과 마음 다지기에 몰두하고 있다. “개개인의 역량, 각각 멤버가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음악을 지속할지에 대해 아티스트로서의 미래를 재정의하고 테스트하는 시기”(조혜림 기획자)를 가지고 있다.
조혜림 기획자는 “이들의 행보는 방탄소년단의 챕터 2의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데뷔 이래 처음으로 개별 평가를 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 관문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이후의 삶, 개별 아티스트로서 방향성을 찾는 계기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면서 “방탄소년단 10주년의 의미는 그들이 영원하길 바람과 동시에 각각의 색을 가진 아티스트로 데뷔한 멤버들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시험하는, 새로운 아티스트의 탄생을 목도하는 과정의 중요한 챕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