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 사랑은 남풍을 타고 달려요”(あ- 私の戀は南の風に乘って走るわ)
남풍(南風)을 타고 온 일본 ‘원조 국민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대표곡 ‘푸른 산호초(1980·青い珊瑚礁)’ 열풍이 국내에서 크게 불고 있다.
열풍의 진원지는 지난달 26~2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신드롬 K팝 걸그룹 ‘뉴진스(NewJeans)’의 팬미팅 ‘버니즈 캠프 2024 도쿄돔’이다. 뉴진스 멤버 하니가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했다며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마이니치 신문(毎日新聞), 오리콘 뉴스 등 일본의 주요 매체들이 하니의 ‘푸른 산호초’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해당 영상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공유되면서 국내에서도 하니와 함께 해당 곡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게 하니의 ‘푸른 산호초’는 일본 경제부흥의 절정이었던 쇼와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현지 국민 아이돌에 대한 향수, 복고를 신선하게 여기는 한일 Z세대, 새로운 음악을 찾는 타국의 음악 팬들 사이의 접점을 만들어줬다. 베트남·호주 이중국적을 지닌 하니가 한국을 기반으로 삼는 K팝 아이돌 자격으로, 일본어 곡을 부르는 모습은 음악엔 국경이 없다는 인식도 새삼 심어줬다.
일본의 1세대 아이돌은 1970년대를 주름 잡은 야마구치 모모에다. 그녀는 1980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같은 해 ‘맨발의 계절’로 데뷔한 세이코가 모모에의 빈 자리를 바로 채웠다.
‘푸른 산호초’는 세이코의 두 번째 싱글이다. 청량함을 강조한 멜로디와 순정을 가득 담은 가사는 ‘세이코짱’ 신드롬에 불을 지폈다.
‘J팝 전문가’인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저서 ‘당신이 알아야 할 일본가수들’에서 “‘푸른 산호초’가 시대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돌 신의 계보는 그렇게 공식적인 후계자를 맞이함과 동시에 시장의 확장을 도모했다”고 짚었다.
또 “보고만 있어도 어느새 헤벌쭉 미소를 짓게 되는 그의 손짓 하나 눈짓 하나에 음악 신의 개혁을 일구어냈던 명망 높은 뮤지션들이 잠시 공식적인 후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연했다. 이런 이미지를 하니가 그대로 재현했고, 국적을 넘나드는 아이돌의 정반합 해석으로 음악 팬들이 특정화된 기표에서 다양한 함의를 끄집어내게 만들었다.
특히 세이코는 ‘세이코 컷’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유행시킬 만큼 당대 일본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H2’ ‘러프’ 등으로 국내에도 상당한 팬을 보유한 일본 만화가 아다치 미츠루의 또 다른 명작 ‘터치’의 여주인공 ‘아사쿠라 미나미’가 세이코를 오마주한 캐릭터다. 특히 머리 스타일이 많이 닮았다.
미나미(みなみ)라는 이름으로 남(南)쪽에서 따왔다. 미나미의 부친이 운영하는 카페 이름은 심지어 ‘남풍'(南風·미나미 카제)이다. 이렇게 ‘터치’ 곳곳에 ‘푸른 산호초’의 흔적이 묻어나 있다.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들은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함이 있는데 세이코가 이 방면에선 선두주자다.
일본 리얼로봇 SF 애니메이션의 걸작인 ‘마크로스’의 ‘민메이 미나미’ 캐릭터도 세이코에서 영감을 받았다.
‘푸른 산호초’는 지금처럼 열풍까지 일으키지는 아니지만 다른 장르의 대중문화를 통해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조명된 적이 있다.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의 대표작 ‘러브레터'(1995)에서 등장인물들이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여러 전 부른다. 영화 초반 ‘아키바'(도요카와 에쓰시 분)가 유리 공예 작업을 하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남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시와바라 다카시)의 약혼녀인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와 아키바 등이 모인 산장에서도 ‘푸른 산호초’와 세이코 얘기가 나온다.
조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츠키가 죽기 직전까지 이 곡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츠키는 생전 세이코를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이 곡을 계속 되새겼다고 한다.
일본 남쪽 지역인 고베에 사는 자신이 일본 북쪽 지역인 오타루에 사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첫 사랑 ‘후지이 이츠키'(나카야미 미호 1인2역)를 끝까지 그리워한 모습에 맞다. 이처럼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는 첫사랑에 대한 노래의 다른 이름이다.
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총괄 프로듀싱으로, 국내와 일본에 Y2K 신드롬을 불러온 뉴진스는 그렇게 누군가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을 피어올린다. 그건 무엇에 대해 진지하게 애정을 쏟았던 자신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