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감싼 건 ‘언체인드 멜로디’ 아닌 전자음악 영화 ‘서브스턴스'(2024)
“오 마이 러브, 마이 달링(Oh My Love, My Darling)∼”
할리우드 스타 데미 무어(63)를 그간 자연스레 따라다닌 노래는 미국 블루 아이드 솔 듀오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대표곡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였다.
이 노래가 삽입된 영화 ‘사랑과 영혼'(1990)에서 무어가 맡은 도예가 ‘몰리’는 한 때 모든 남성의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서브스턴스'(2024)를 본 관객이라면 무어에 대해 강렬한 전자음악을 먼저 연상할 것이 분명하다. 덥스텝 등 귀에 때려 박히는 난해하고 실험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선혈이 낭자한 고어(gore)물에 피범벅이 된 듯 몸·마음을 뒤흔든다.
‘서브스턴스’ 음악감독은 10여년 전 ‘포스트 덥스텝 시대’를 열 주인공으로 통하는 영국 작곡가 겸 프로듀서 라퍼티(Raffertie)다. 베이스라인·드럼이 심하게 쪼개지는 덥스텝의 새로운 총아였던 그의 대학 전공은 클래식음악이다. 영국 명문 로열 버밍엄 콘서바토리(Royal Birmingham Conservatoire)에서 클래식 & 현대음악 작곡을 공부했다.
영화 ‘존 윅’의 스핀 오프 시리즈인 미국 플랫폼 피콕의 ‘컨티넨털: 존 윅 세계 속 세계'(The Continental: From the World of John Wick) 음악 등 여러 영화, 시리즈 음악을 담당한 라퍼티는 전기충격을 가한 듯한 ‘서브스턴스’ 음악을 통해 만개한 재능을 뽐낸다.
무어의 연기력 역시 ‘서브스턴스’에서 만발한다. 사실 ‘사랑과 영혼’을 비롯 강인한 여성 법무관 ‘조앤 갤로웨이’ 역을 맡았던 ‘어퓨굿맨'(1992) 등 무어는 외모뿐 아니라 연기력도 높게 평가 받는 배우였다.
그러다 ‘스트립티즈'(1996), ‘지. 아이. 제인'(1997) 같이 골든라즈베리에 지명됐던 혹평 받은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평가절하됐다. 약 7억원을 들여 전신 성형했다는 등 각종 가십의 주인공도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을 풍자한 듯한 ‘서브스턴스’ 속 배역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통해 그녀는 과거를 찢고 배우로서 다시 태어났다. 오스카상을 수상하는 등 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살아가는 엘리자베스. 그녀는 젊음을 보장해준다는 약물 ‘서브스턴스’를 스스로 주사한다.
이 약물이 젊음을 되찾아주는 방식은 전환이 아닌 전복이다. 젊고 섹시한 여성 ‘수’가 엘리자베스 육체를 뚫고 나온다. 막판 전라의 엘리자베스와 수가 격렬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피로 뒤범벅이 된다.
무어는 지난 5일(현지시간) 이 영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더 비버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가 연기력 인정의 상징인 골든글로브를 받은 건 연기 경력 45년 만에 처음이다. 그녀는 시상식에서 “30년 전, 어느 프로듀서가 나를 팝콘 배우라고 말해서 이런 상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돈을 많이 버는 영화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인정받을 수는 없다고 믿었다”고 털어놨다.
그런 가운데 미친 대본 ‘서브스턴스’를 받았다. ‘서브스턴스’를 연출한 프랑스 출신 코랄리 파르자 감독에게 감사를 전한 무어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 순간에 어떤 여성이 타인의 판단기준만 내려놓으면 자신의 가치를 알 수 있다고 말해줬다. 오늘의 영광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거기에 속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선물로 받겠다”고 부연했다.
그런 마음은 무어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치매 투병 중인 할리우드 액션스타이자 전 남편인 브루스 윌리스를 각별하게 돌보고 있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본다.
그건 어쩌면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난해함의 미학을 선보이는 ‘서브스턴스’ OST와도 이어진다. 우리네 인생은 원래 단순한 선율이 아니다. 빠른 비트에 몽환적인 리듬, 이해할 수 없는 박자가 자주 찾아온다. 난해할 거 같다고? EDM 기반의 테크노 장르를 통해 ‘전자 쇠 맛’을 맛보게 해 준 에스파의 ‘위플래시’를 좋아하는 청자라면, 충분히 “외면해도 소용없지”다. 시작되는 순간, 끝나버린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