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당선인이 차기 정부 국정비전을 제시할 인수위원장 임명을 놓고 숙고에 들어간 가운데 정치권에선 인수위 인선에 진통을 겪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인수위원장 발표가 늦춰질 가능성마저 당 한편에서 제기되면서 윤 당선인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예상 밖 변수를 만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을 맡더라도 윤 당선인이나 안 대표나 국정운영을 낙관만은 할 수 없다는 비관론도 대두된다
윤 당선인의 5년간 국정운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수위원장 인선은 단순히 인수위 책임자 역할에 국한하지 않고 윤 당선인의 국정철학이나 방향, 국정 동력을 뒷받침해준다는 점에서 윤 당선인으로서는 인선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장제원 대통령당선인 비서실장도 12일 기자들과 만나 안철수 대표 측과 추가 조율의 필요성을 시사하며 “오늘 오후에 (만나서)좀 논의하겠다”며 “걸림돌은 없고, 안철수 대표님이 맡으신다는 결심을 하면 거기에 따라서 또 구성이 좀 있을 것이고 또 본인이 안 하실 경우에는 또 다른 또 구성이 되지 않겠나. 연동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대선 후보 시절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야권 단일화를 합의하면서 공동정부 출범을 목표로 인수위 구성 단계부터 서로 협의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단일화 합의와 무관치 않다.
문제는 인수위원장 발표가 순탄치 않은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선 다음날 인수위원장 발표를 할 수 있다는 말도 흘러나왔으나 윤 당선인과 안 대표가 ‘도시락 회동’을 가진 후에도 인수위 인선 발표는 없었다.
회동 후 양측은 인수위에 관한 공개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안 대표는 당선인과 회동에서 인수위 인사를 논의한 사실을 부인하면서 인수위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데 대해서도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들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를 놓고 당 내에서는 “윤 당선인의 인수위 인사가 어그러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안 대표가 당선인과의 회동에서 인수위원장을 맡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으나, 윤 당선인 측은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직을 수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아직 인수위원장은 결정된 게 없고 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고만 전했다.
국민의힘에선 중도·통합 메시지를 전달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인사로 안 대표가 적임자라는 데 큰 이견이 없어 인수위원장 인선도 무난한 듯 보였으나, 당 주변에선 윤 당선인과 안 대표가 공동정부 운영 의지는 확고하지만 예상치 못한 각종 변수를 놓고 샘법이 복잡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안 대표가 ‘의지’만 있다면 인수위원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본인(안 대표)이 인수위원장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성과를 낼 자신이 있으면 맡는 것이고 또 자리만 차지하고 성과를 내는 데 자신이 없다면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의 의지 여하에 따라 인수위원장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선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을 맡고 본인이 직접 국무총리로 내각에 참여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안 대표가 인수위 뿐만 아니라 국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인수위의 추진력에도 궁극적으로는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판단이다.
관건은 안 대표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나설 경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안 대표를 초대 총리 후보자로 내세우더라도 안 대표의 총리행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우선 안 대표가 보유한 안랩 주식을 백지신탁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안 대표는 안랩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로 상장주식 186만주(약 1839억5400만원)를 보유하고 있다. 안 대표의 전체 재산 1979억8500만여원 가운데 90% 이상을 주식이 차지하는 셈이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고위공직자가 3000만원 이상 주식을 보유한 경우에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두 달 안에 해당주식을 매각하거나 수탁기관에 백지신탁을 맡기도록 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안 대표가 막대한 주식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인수위 인선과 맞물려 주시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인수위원장을 맡고 윤석열 정부와 호흡을 맞추고 해야하는데 개인적으로 총리를 안 하려고 하다면 그 이유는 백지신탁이 될 수 있다”며 “지금 총리해서 허니문 기간에는 잘 될 수 있겠지만, 중간에 윤석열 정부가 삐거덕하거나 인사청문회 기간에 혹독한 검증으로 자칫 청문회를 끝으로 정치생명을 마무리할 수도 있으니 총리직은 고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압도적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초대 국무총리 임명을 순조롭게 협조할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더라도 윤 후보가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안 대표의 백지신탁도 관건이지만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나 안 대표 딸에게도 청문정국에서 날카로운 검증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에선 10년 전에도 불거진 바 있던 안 대표 일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부인 김씨의 서울대 교수평가 하위 논란, 딸의 미국 호화 유학생활·재산 형성 의혹 등이 이미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의 다른 인사는 통화에서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가 소위 양다리를 걸친 건 주지의 사실아니냐”며 “안 대표가 ‘손가락’ 발언까지 하다가 단일화해버리니깐 민주당에선 더 큰 배신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을 통한 총리 지명까지 하게 되면 정국 경색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 당선인도 그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자칫 총리 인준부터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식물대통령’으로 출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에선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직만 수락하고 내각에 들어가지 않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이럴 경우 안 대표는 인수위가 제시한 국정과제가 차기 정부에서 제대로 반영, 실현될 수 있도록 행정력의 담보를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안 대표가 인수위원장만 하고 물러날 경우 안 대표의 인수위 활동이 국정에 제대로 반영 안 되면 성과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안 대표가 아예 인수위원장직과 총리직을 모두 고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없진 않다. 국민의힘 당 내에선 “안 대표가 초대 총리를 맡더라도 결국 대통령의 들러리밖에 안 될 것”,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권이 힘도 못 쓰는데 굳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총리를 하겠나”라는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안 대표는 국민의당·국민의힘 합당 후 전당대회를 요구해 당권에 도전하거나 6월 지방선거 출마로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면서 본인의 능력을 시험대에 올려 성과를 인정받고 차기 대권주자로 군림하는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더라도 ‘안철수의 사람’은 사실상 전무한 만큼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조직 기반을 다져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안 대표가 당대표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경기도지사 등 지방선거에 나설 가능성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국민의힘의 한 인사는 “안철수 대표는 임명직보단 당으로 U턴해서 자기 세력을 키우고 지방선거를 준비하면서 경기도지사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총리)임명직은 6개월, 1년하다가 날아가버리면 끝이다. 그런데 선출직으로 나가면 자기 성과를 보여주면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처럼 경기도지사는 차기 대선주자로 클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