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의문점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내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그의 보안 및 군 측근들 사이의 긴장관계다. 미국의 대외정책 전문지 포린어페어즈는 최근 뉴스레터에 러시아에서 푸틴 측근들에 의한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점검하는 글을 실었다. 기고자들은 러시아의 독립언론인 안드레이 솔다토프와 이리나 보로간이다.
TV로 중계된 안보회의에서 푸틴이 대외정보책임자 세르게이 나리슈킨이 침공 의지가 없다며 질책한 뒤 침공이 시작됐다. 2주 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을 당해 큰 사상자를 내면서 푸틴은 러시아연방보안국(FSB) 소속 장군 2명이 정보 오판과 우크라이나내 친 러세력 형성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가택연금했다. 푸틴은 또 방위군 부사령관을 해임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달초에는 가택연금중인 FSB 소속 장군 한 명이 피로르토보 감옥에 투옥됐다.
정보 당국자들 못지 않게 군도 고초를 겪고 있다. 푸틴이 전과가 나지 않아 화를 낸다는 소문이 도는 와중에 푸틴이 가장 신뢰하는 참모라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지난달 2주 가량 대중 앞에서 사라졌다. 이후 안보회의 참석 모습과 국방부 회의 참석 모습이 공개됐지만 그의 모습은 침울하고 위축된 모습이었다.
지난달말 미 정보당국이 러시아 국방부가 푸틴의 질책을 우려해 전쟁 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9일 푸틴은 지휘체계를 재편하고 알렉산드르 드로르니코프 장군을 우크라이나 전쟁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몇년 동안 러시아 안보수뇌부를 가리키는 실로비키(siloviki)들이 푸틴 체제의 핵심 권력을 차지했다. 연방보안국(KGB) 출신인 푸틴이 이들에 의지해 권력을 강화하고 통치해왔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부상으로 다른 실로비키들이 다소 위축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푸틴이 이번처럼 실로비키들과 관계가 악화한 적은 없었다. 푸틴이 갈수록 이들을 탄압하고 전쟁 상황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모스크바에서 확산하면서 실로비키들이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보안 세력과 러시아 국가 사이의 역사적 관계와 푸틴이 권력을 장악한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최근 상황이 주목할만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기존 권력 질서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긴장이 심해진다고 해도 실로비키들이 푸틴에 항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로비키들이 푸틴에 맞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군과 국가의 관계부터 이해해야 한다. 러시아군은 통치자에 맞선 적이 한번도 없다. 다른 군사국가와 달리 러시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러시아군이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마지막 사례는 1825년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들이 니콜라스 1세 황제 폐위를 시도한 일이다. 반란군은 대패해 쿠데타 지도자들 대부분이 처형되거나 망명했다. 1952년 이집트 자유장교단이 파루크 국왕을 축출한 것과 달리 러시아군은 권력의 대안으로 떠오른 적이 없다. 소련이 붕괴한 이래 일부 예비역 군인들이 권력 장악을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푸틴이 권좌에 오르기 전인 1990년대는 러시아 정부가 취약했고 여러 세력들 사이에 균형을 잡는데 급급했다. 한때 일부 군인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정부를 전복시키기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1993년 10월 자칭 장교연맹이라는 소련 예비역 군인들이 극우보수 반란에 가담했지만 반란 직전 체포됐다. 4년 뒤 레프 로흐린이라는 장군이 예편한 뒤 군대지원운동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권력 장악을 시도했으나 1998년 부인과 다투다가 총에 맞아 숨졌고 정당은 해산했다.
그 시기 정보 및 군 고위당국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통령에게 맞서 모스크바 시장 등 유력 지방 정치인들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푸틴이 이같은 위험을 조직적으로 분쇄했다. 러시아는 더이상 중앙정부에 맞서는 군인들이 없다. 푸틴의 정적들은 2015년 암살된 보리스 넴초프나 알렉세이 나발니처럼 투옥되거나 나발니의 측근이던 블라디미르 밀로프 전 에너지부 차관, 세르게이 알렉사셴코 전 재무부차관 안드레이 코지레프 전 러시아외무장관 등 모두가 해외로 망명했다.
푸틴에게 군이 저항한 움직임이 일부 있었지만 초기에 분쇄됐다. 2005년 군정보국에서 예편한 블라디미르 크바흐코프 대령이 1990년대 러시아 민영화를 주도한 아나톨리 추바이스 총리를 암살하려 시도했었다. 2000년대 초 추바이스는 푸틴의 신임을 받았다. 크바흐코프 세력이 추바이스가 탄 차량이 지나가는 도로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총격을 가했지만 암살에 실패했고 크바흐코프는 투옥됐다. 크바흐코프가 석방되면서 유력 정치인으로 부상했으나 FSB에 다시 체포됐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소련이 유대인 음모로 붕괴했다고 믿는 적군 노병들 뿐이었다.
사실 푸틴의 정적 제거를 묵묵히 진행될 수 있었던 건 정부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군의 무기력함이 크게 작용했다. 소련 시절 비밀 경찰이 군을 면밀히 감시했었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지 1년이 채 못된 1918년 KGB의 전신인 체카(Vheka)가 만들어져 적군 내 반대자들을 숙청했다. 스탈린과 이후 지도자들도 감시를 이어갔으며 군을 확고히 장악했다. 모든 사단에 당위원회가 만들어졌고 KGB는 대대적으로 군에 정보원을 심어 감시했다. 소련이 붕괴한 뒤 KGB는 FSB로 재편됐지만 KGB가 사용하던 루뱐카 청사는 물론 KGB의 업무를 대부분 이어받았다.
푸틴이 권좌에 오른 뒤 FSB를 강화해 군내 반대자를 감시하도록 했다. 2000년초 대통령 대행이던 시절 푸틴은 FSB가 군의 정보부문을 관여하도록 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FSB는 법률에 따라 “러시아연방의 정치체제를 폭력적으로 바꾸고 폭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불법 군 조직, 범죄단체, 개인 및 단체”를 수사할 수 있게 됐다. 2004년 FSB의 군정보국이 보안관련 전 부서에 인원을 배치했으며 이 부서는 러시아군 전체에 요원을 파견한 FSB 최대 부서가 됐다.
이 조치로 FSB 요원들은 러시아군 전체에 침투해 있다. 예컨대 전투기 6대와 헬리콥터 12대가 배치된 칼루가 지방 에르몰리노에 있는 방위군 공군기지처럼 작은 부대도 지역 FSB 책임자의 감독을 받으며 기지 요원들 중 20명이 공개적으로, 16명이 비공개로 협력자로 활동하도록 규정돼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FSB는 러시아군대가 사보타지를 당하거나 배후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FSB 요원은 또 점령지역의 정치적 장악도 책임진다. 동시에 러시아군에 대한 감시역할도 하고 있다. 이처럼 집중 감시를 받는 러시아군은 반란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FSB 자체는 어떤가? 푸틴체제와 마찬가지로 스탈린 시대 KGB는 가장 강력한 권력집단이었다. 이들중 누군가 푸틴에 반기를 들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FSB가 그런 움직임을 보인 적이 없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보안국은 항상 부패했지만 자체 권력 기반을 구축한 적은 없었다. FSB의 구조 자체가 개별 간부들이 직위에 충성하도록 돼 있지 개인에 충성하지는 않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FSB 장군이 퇴직한 뒤라도 자신에게 충성하던 부하직원의 충성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또 FSB 요원들 스스로 자신이 푸틴에 의해 축출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현재 부패나 반역 혐의를 받고 투옥된 FSB 간부들이 10명이 넘는다. 반역혐의는 대부분 미국의 첩자를 뜻한다. 실제 잘못해 투옥된 사람도 있지만 잘못이 없는데 투옥된 경우도 많다. 대부분 FSB의 내사담당 부서에 의해 체포된 경우로 FSB 직원들 사이의 불신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다. 중간 간부들이 장군들을 믿지 못하며 장군들은 부하들을 믿지 못한다. 1991년 KGB 국장 블라디미르 크류흐코프의 쿠데타 시도는 KGB 직원들이 두고보자는 태도를 보임에 따라 실패했다.
3,40대가 주축인 FSB의 현 직원들은 푸틴 이외에 다른 대통령을 경험한 적이 없으며 2007년 이래 FSB를 이끌었던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국장 아래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이들은 1990년대 여러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던 FSB의 앞 세대들과는 다르다. 현재의 FSB 간부들은 대통령의 명령에만 복종한다. 그들의 주 임무는 정적이나 반대세력을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가차없이 제거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큰 우대를 받기 때문에 더욱 더 체제에 충성하고 있다.
푸틴이 군과 보안 당국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더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지지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푸틴과 보안 고위층 측근들 사이의 두드러지는 긴장관계는 푸틴이 어느때보다 자신에 대한 도전에 민감해져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거꾸로 말하면 푸틴의 측근중 일부가 푸틴이 정한 앞날에 불만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엉터리 정보 판단과 형편없는 전과 등에 대해 푸틴이 실로비키에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실로비키들은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푸틴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로비키들은 정치적 경험이나 지지 기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킬 능력이 없다. 그들은 또 러시아 국민들이 극적으로 푸틴에 반대하게 된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실로비키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에 푸틴이 그들의 신임을 잃는 길은 한가지 뿐이다. 러시아의 경제난이 악화해 주지사들이 푸틴 주변에서 이탈하고 푸틴이 20년 이상 실로비키들을 위해 구축해온 경제적 기반이 붕괴한다면 실로비키들도 자신들의 미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라면 그들도 이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