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고가 주택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몇 년간 호황을 누리던 고급 부동산 시장이 최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주식시장 급변에 흔들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무역 관세 정책과 주식시장 급락 여파로 수천만 달러 규모의 고가 주택 매매 계약이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뉴욕 맨해튼의 고급 주택가인 레녹스힐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6월 1일, 방 4개짜리 공동주택(Co-op)이 1,025만 달러에 매매 계약됐으나, 트럼프발 무역전쟁이 본격화된 지난 13일 매수자가 계약을 철회했다. 해당 매수자는 보유 주식 가치가 25% 급락하면서 구매 의지를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개인은 “트럼프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미국 전역의 고가 부동산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LA 부촌 벨에어에서는 6,500만 달러짜리 저택 거래가 잔금 직전까지 갔다가 계약이 파기됐다. 에스크로 회사에 계약서와 계약금까지 맡긴 상태였지만, 상호관세가 발효되자 매수자가 발을 뺐다.
중개인 애런 커먼은 “지난 2주간은 매우 혼란스러웠다”며 “매수자들이 뉴스에 매우 민감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부정적인 뉴스가 이어지면 사람들은 부동산 계약을 주저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왔다. 4,200만 달러 규모의 고급 주택 거래가 무산됐고, 이를 중개하던 줄리언 존스턴은 “내 퇴직연금도 이번 주에 타격을 입었다”며 “기분이 나빠진 상황에서 나가서 수천만 달러짜리 집을 사겠느냐”고 말했다.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미국 내 상위 5% 고가 주택의 중간 판매 가격은 전년 대비 8.8% 상승했다. 일반 주택 상승률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뉴욕, LA, 팜비치, 아스펜 등 주요 부촌 지역은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계속 치솟았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부유층 자산 중 36.3%가 주식과 뮤추얼 펀드에 묶여 있다는 리얼터닷컴의 조사처럼, 주가 하락은 고가 부동산 시장에도 직격탄이다. 이달 3일과 4일, 트럼프의 관세정책 발표 이후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6조6천억 달러가 증발한 여파는 부동산 시장에도 고스란히 전이됐다.
트럼프가 지난 9일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고가 주택시장에선 여전히 불안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박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