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최대 수산시장의 이름을 달고 지난 3월 샌프란시스코 인근 데일리시티에 문을 연 ‘자갈치(Jagalchi)’ 마켓이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역 매체 The Standard는 최근 보도를 통해 이 매장이 “한인들에게 낯설고, 오히려 비한인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됐다”는 한인들의 반응을 전했다.
The Standard는 부산 자갈시장이 지닌 ‘혼돈 속의 생명력’과 ‘시장 특유의 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 매장 내부는 넓은 통로와 세련된 진열 구조, 조명 디자인이 돋보이지만, 그만큼 시장 특유의 생동감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한인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좁고 빽빽한 H마트 통로가 오히려 더 한국적이고 정겹다”며 “자갈치는 한국 사람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니라 외국인을 위한 쇼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갈치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매장 전경 역시 깔끔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한인들은 이를 두고 “한국적 정체성을 ‘박제’한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운영사인 한국 메가마트 측은 이 같은 반응이 예상된 결과라고 밝혔다.
정애슐리 마케팅 매니저는 The Standard 인터뷰에서 “자갈치는 한국인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며 “비한인·비아시안 고객이 전체 방문자의 4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확장 전략’이 한인 사회의 정서와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1.5세, 2세뿐 아니라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대까지도 “누구를 위한 마켓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정작 한인들은 ‘손님’이 아니라 ‘관객’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한식당 ‘일차’의 한인 업주는 “다양한 한국 술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좋았다”면서도 “매장 분위기가 너무 압도적이고 낯설어 오래 머물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셰프, 미슐랭 한식당 ‘쌀’의 배준수 대표는 “한국 음식이 주류 사회에 자리 잡은 건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자갈치는 한인의 일상적 장보기 공간이라기보다 외국인을 위한 ‘문화 체험형 마켓’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자갈치’는 한국의 바다, 생선, 시장, 그리고 삶의 활기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그러나 데일리시티 자갈치는 그 상징을 세계화 과정에서 전시품으로 바꿔 놓은 듯하다는 것이 이 매체의 지적이다.
깔끔함과 세련미는 있지만, 그 속에는 부산 자갈치 특유의 ‘비린내 나는 생동감’이 없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시도는 분명 의미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한국인에게 낯선 한국’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왜곡에 가깝다.
한인들이 비판은 단순한 보수적 반응이 아니라, ‘이름만 한국인 공간’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