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게 “외교·안보·기밀”…특활비 숨길 이유로 안 통한다
문재인정부의 특수활동비와 김정숙 여사 등 의전비용의 구체적 집행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최근 나온 것은 대통령비서실이 비공개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를 들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안전보장·외교관계 등 국가에 중대한 이익을 해친다는 그럴듯한 비공개 사유를 붙였음에도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충실히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정상규)는 한국납세자연맹(연맹)이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지난 10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일부 승소지만, 연맹이 요구한 정보 중 개인정보 등 민감한 부분만 빼고 모두 공개하라는 취지다.
연맹이 2018년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에 요청한 정보는 대통령 내외 의전비용과 취임 이후 구체적인 특활비 집행내역, 특활비 지출결의서와 운영지침(집행지침) 등이다.
대통령비서실은 2018년 7월 이들 정보를 정보공개법에 따라 비공개한다고 결정했다.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공개 대상이 된다고 정하면서 8가지 비공개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다른 법률에 따라 비공개 사항인 경우(1호)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에 관한 것으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2호) ▲국민 보호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3호) ▲진행 중인 재판·수사 등과 관련된 정보(4호)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5호) ▲개인정보로 사생활 침해 우려(6호)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7호) ▲특정인에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8호) 등이다.
대통령비서실은 소송 과정에서 대통령 내외 의전비용과 관련해서는 1호를, 특활비의 구체적 집행내역·지침과 관련해서는 2호와 5호를 비공개 결정의 근거로 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결정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대통령비서실은 의전비용이 다른 법률, 즉 ‘대통령지정기록물법’에 따라 향후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돼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날의 다음 날부터 15년의 범위에서 보호할 정보라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대통령지정기록물은 현재 재임 중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이후에나 지정되는 것이라며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거나 가능성으로 비공개 대상 정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특활비 집행내역에 대한 대통령비서실 주장에 대해서는 “대상이 된 정보가 정보공개법이 정한 비공개 사유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서) 대통령비서실은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개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한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이익을 해하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판단은 최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특활비 집행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에도 등장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이정민)는 지난달 11일 “수사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를 공개한다고 해서 곧바로 수사활동의 기밀이 유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들은 이 사건 심리 과정에서 이 부분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검찰은 비공개 사유로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4호를 근거로 들었다.
이런 논리는 ‘깜깜이 예산’인 특활비의 비공개 사유마저 깜깜이라는 지적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활비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최근 판결은 상급심에서 뒤집어질 수 있지만, 행정기관이 이를 위해 비공개 사유를 명확히 해 국민들에게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는 법원 지적은 따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특활비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불복했고, 대통령비서실은 아직 항소 기간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