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문가들은 북한 당국의 돌연한 코로나19 감염 시인을 단지 심각한 상황의 반영을 넘어 내부통제 명분과 함께 외부에서 백신 지원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끝에 나온 결정이라고 해석했다고 미국의 소리(VOA)가 14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북한 문제를 다룬 수미 테리 우드로 윌슨 센터 아시아 프로그램 국장은 전날 VOA에 북한 당국이 최근 코로나 감염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북한 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테리 국장은 북한 당국이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발표할 리 없다며 지금은 이미 ‘통제 불능’ 상태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 최악의 보건 체계와 열악한 의료 인프라, 전체 주민의 40% 이상이 영양부족 상태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번 사태가 잠재적으로 중대 인도주의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제껏 ‘코로나 제로’를 주장한 북한은 최근 코로나19 감염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1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4월 말부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조짐이 나타나 현재까지 총 35만여명의 발열자가 생겼다고 밝혔다. 또한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 1명을 포함해 6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마스크를 쓴 채 나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북한 내 모든 도, 시, 군을 봉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헤리티지 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낮은 코로나 검사 비율 등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의 발표보다 감염률이 더욱 높다고 추정했다.
일반 주민도 인지할 만큼 코로나19가 폭넓게 확산하면서 북한 당국도 더는 은폐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클링너 연구원은 해석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다만 북한 당국이 이런 상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 외부 지원 요청을 위한 사전 포석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클링너 연구원은 코로나가 널리 퍼졌다면 외부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북한이 2년 전에도 코로나 관련 ‘중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도 백신 지원은 물론 인도주의 지원과 식량 지원도 모두 거부했던 전례를 거론했다.
일부 미국 전문가는 북한 당국의 갑작스러운 ‘코로나 감염 시인’을 계속되는 국경통제와 연관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해군 분석센터(CAN) 켄 고스 적성국 분석 담당 국장은 북한 정권이 국경봉쇄 등 지속하는 내부통제에 대해 주민에게 명분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고 코로나19 감염이 가장 쉬운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기간 이어지는 제재로 인한 재원 고갈과 정권 안정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로 불만이 높아가는 주민을 향해 ‘코로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런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탈북민 출신인 민간단체 원코리아의 이현승 워싱턴 지국장도 ‘코로나가 없다면서 국경은 왜 계속 닫아 우리를 힘들게 하느냐’라고 의심하는 북한 주민에게 김 위원장이 답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현승 지국장은“2년 동안 국경을 닫으면서 북한 내부적으로 불만이 너무 커졌다. 지금 해외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돈을 못 벌고 또 국내에 있는 사람들도 자본이 없어서 물건을 살 수도 없다. 그리고 굶어 죽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고 모든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이제 국경을 닫아야만 하는 이유를 또 설명해야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현승 지국장은 현 상황에 한계를 느낀 김 위원장이 외부의 백신 지원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차원도 있다고 보았다.
우드로 윌슨 센터의 테리 국장은 북한이 이미 거부한 중국 시노백,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등이 아닌 ‘mRNA’ 백신, 즉 미국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제안한다면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테리 국장은 북한이 공개적인 방식보다 비공개 지원을 원할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분배 감시와 투명성 요구’ 등으로 백신 수용이 북한 측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해군 분석센터의 고스 국장도 북한이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약한 모습’이 노출되는 형식, 혹은 한국 등이 ‘생색’을 내는 지원은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스 국장은 자신들이 원하는 제재 완화가 아닌 백신 제공 등 인도주의 지원을 통한 외교 재개를 미국이 밀어붙인다면 북한이 이를 거부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원코리아 이현승 지국장은 북한에선 일부 주민이 밀수를 통해 반입한 미국제 백신을 접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미국 백신일 경우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편 북한은 ‘코로나 비상시국’과 무관하게 무력시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고 VOA는 전했다.
고스 국장은 코로나와 내부통제, 경제악화 등 상황 속에서 정권의 정당성이 필요하며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카드는 ‘핵무기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앞으로 몇 달간 핵실험 등 무력 도발 수위를 더욱 높일 공산이 농후하다고 고스 국장은 전망했다.
테리 국장도 북한이 코로나 감염을 발표한 날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며 코로나19 발병이 ‘무력시위 휴지기’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복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북한이 전술 핵무기 등 새로운 무기실험을 계속 진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헤리티지 재단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무기실험 주기를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코로나로 인해 국가적인 이동제한이 이뤄지면 미사일 시험 등 군부대의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