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지연으로 사상초유의 국회 공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24일 최대 쟁점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양보하겠다고 선언했다.
단 체계·자구심사권을 비롯한 법사위 권한 축소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가칭 한국형 FBI) 설치를 논의할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 등이 사실상 전제된 것이어서 여야가 합의에 이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합의대로 (21대 국회) 하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는 데 동의한다”며 “대신 국민의힘도 양당 간의 지난 합의 이행을 약속해달라”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거듭 강조하지만 신뢰 회복이 국회 정상화의 필수 조건이다. (오는) 27일 월요일 오전까지 답을 기다리겠다”며 국민의힘에 공을 넘겼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3일부터 1박2일 간 국회의원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박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원구성 협상과 관련한 의견 수렴을 통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는 “민주당 156명 의원이 참석한 1박2일 워크숍에서 수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며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민생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가 곧 당이 제대로 쇄신하는 길이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유일한 방향이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에 닥친 이 경제 위기가 언제 끝날지, 그로 인한 충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상할 수 없는 초비상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무대책과 무능을 계속 지켜만 볼 수 없다”며 “야당일지라도 원내1당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란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은 국회를 조속히 정상화해 국민 편에 서서 민생과 경제를 우선 챙기고, 나아가 정치 보복과 권력 사유화로 치닫는 윤석열 정권의 독주를 막는 데 민주당이 더 적극 나서야 할 때라고 의견을 모아주셨다”며 “이에 민주당은 작년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야 원내대표는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기로 합의한 바 있지만 민주당은 원내대표가 바뀌면서 전반기 원내대표 간 합의가 후반기 원 구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합의를 국민의힘이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도 명분을 제공했다.
이에 따라 타 상임위에서 만든 법안의 체계·자구심사를 통해 입법부 내 ‘상원(上院)’ 역할를 하는 법사위원장을 누가 가져갈 것이냐가 다시 쟁점이 됐고 국회 공백 사태를 불러 왔다.
다만 박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에 ‘양당 간의 지난 합의 이행’을 촉구하면서 무조건적인 양보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원 구성과 함께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또는 축소를 통한 법사위 기능 조정과 중수청 논의를 위한 사개특위 명단 제출까지 일괄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박 원내대표는 법사위 권한 축소가 조건임을 묻는 질문에 “지난 원내대표들이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는다고 한 것은 당연히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남용 못하게 (전제)한 것인데 여야가 지켜오지 않았다. 법안이 제대로 개정되지 않은 것”이라며 “당연히 이 부분도 함께인데 국민의힘이 어떤 입장을 갖고 오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냐”고 했다.
사개특위와 관련해서는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국민의힘이 맡는 데 동의를 할 테니 양당 간 지난 합의 이행을 약속해달라고 말하지 않았나. 거기에 그런 내용이 담겨있다고 보면 된다”며 국민의힘의 사개특위 명단 제출이 전제조건임을 시사했다.
그러면서도 박 원내대표는 “저는 제2의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진짜 생산적인 국회를 만드는 상징적 조치가 법사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개혁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국민의힘이 이번 후반기 원 구성 과정에서 당장 개선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21대 국회 내에 반드시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22대 국회부는 2년마다 법사위원장을 누가 할 것이냐로 국회가 공전하는 악순환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것까지 감안해 판단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이는 법사위 권한 축소 여부가 끝내 협상의 걸림돌이 된다면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또는 축소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21대 국회 안에 추진할 것을 약속하는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에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연계해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데 대해서는 “의장과 법사위원장 연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분명히 별개의 사안”이라며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당이 의장을 맡지 않는 경우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일축했다.
대선 과정에서의 양당과 후보를 향한 고소·고발 취하와 관련해서는 “그 문제는 여러번 말했지만 후반기 원 구성과 전혀 무관하다.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마저도 그것은 협상의 전제조건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냐”며 “유일하게 권 원내대표만 전제조건이었다고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박순애 교육부·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의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국회에 요청하며 사실상 임명 강행 수순을 밟고 있는 데 대해서는 “인사에 아주 심대한 결격 사유가 있는 분들이고 국회가 한창 여야 협상을 하고 있는 중인데 당연히 이런 상황을 감안해 청문 요구나 절차를 밟아나가는 게 맞다”며 “그런데 그런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저는 27일까지 답을 기다린다고 했고 국민의힘이 어떤 답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그러나 청문회는 반드시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도 청문회 없이 임명을 강행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법사위원장 양보로 당내 반발이 우려된다는 지적에는 “국민의힘은 지방선거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로 국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프레임 짜기에 골몰해 왔다”며 “지금도 국민의힘이 후반기 원 구성 협상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차기 총선까지 계속 민주당에 책임 전가하고 발목잡기 프레임을 짜려는 일관된 생각이라고 저는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은 발목잡기 프레임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모든 것을 민주당 탓으로 돌리며 장기적으로 끌고 갈 공산도 있어 보인다”며 “국민은 민주당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그런 점에서 우선 우리가 약속을 지키고 국민의힘도 약속을 지키라고 함으로써 민주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게 경제·민생의 위기에 정치권이 해야 될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