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손자가 할아버지를 포함한 일가의 행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비판하고 나서자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와 당사자들이 환영의 뜻을 비쳤다.
전씨의 유가족이 직접 일가의 과오를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불법적인 경로로 부를 모은 정황이 언급되면서 5·18 명예회복은 물론, 900억원이 넘는 전씨의 미납 추징금 환수에 새로운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15일 전씨의 친손자 A씨의 SNS에 따르면 그는 지난 14일 “할아버지가 학살자라 생각한다.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라고 말하는 영상을 게시했다.
이어 자신의 가족에 대해 “아버지(전재용)와 새어머니는 출처 모를 검은돈을 사용해가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며 “(전재만씨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와이너리는 천문학적인 돈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들어갈 수 없는 사업 분야다. 검은 돈의 냄새가 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 전씨와 함께 찍은 사진, 전씨의 아내인 이순자씨가 골프 연습을 하고 있는 영상을 함께 게시했다.
전씨 가족 가운데서 과오를 인정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검은 돈’을 언급, 부정축재 의혹을 제기하면서 전씨 앞으로 책정된 수천억 원 대 추징금의 환수 시급성도 재차 떠오른다.
앞서 전씨는 1997년 4월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확정받았다. 이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지만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 검찰이 특별팀을 꾸려 환수를 이어왔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기준 1279억여 원을 환수, 현재 926억여 원이 남았다.
5·18 단체들은 사과 없이 떠난 전씨가 속죄하는 길은 유족들이 A씨와 같은 진정한 사과와 더불어 추징금을 납부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역사의 죄인은 후손이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이 또한 같은 사례”라며 “유족이 직접 부정축재 정황을 언급한 만큼 드러나지 않은 규모의 비밀 자산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추징금 수사가 속도를 내야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홍인화 5·18기록관장은 “늦었지만 손자라도 전두환과 자신 일가의 과오를 인정했다고 판단, 소신있는 발언을 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 평가한다”며 “요즘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정의 가치관이 묻어난 발언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사무소장은 “전두환 가족의 일원 중 정상적이고 건강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전씨가 종교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참회하는 심정으로 글을 게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게시한 글 중 부정축재 암시가 있는 만큼 추징금 환수 문제 해결의 새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앙재혁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5·18 유족들은 지난 43년 동안 전씨 일가가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보고 울분을 터트려왔다.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하지 못해온 정부도 원망해왔다”며 “유족이 나서 이같은 정황을 고백하고 비판한 것은 다행스러우나 보다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추가 폭로와 함께 추징금 환수에 협조할 뜻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