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신인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10 총선에서 패배했다. 국민의힘이 11일 총 108석(지역구 90석·비례대표 18석)이라는 기대보다 초라한 성적표를 입법 주도권을 거대 야당에 내줬다. 특히 원톱 체제를 고수했던 한 위원장의 책임론도 커지고 있어 향후 대권 도전에도 먹구름이 낄 것으로 보인다.
11일 오전 4시 개표율 97.46% 기준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에서 당선됐거나 유력시 되고 있다.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18석(잠정)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여당의 의석수는 총 108석(잠정)이다.
정치권에선 여당 승리 기준을 135석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민주당의 단독 과반을 저지할 수 있는 숫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적은 의석수를 얻었다는 점에서 여당의 패배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범야권 200석을 막아냈으나, 180석을 내주면서 향후 각종 법안 처리에 대한 주도권에서 완전히 밀려날 수 있다. 의회 180석 이상을 확보하면 각종 법안에 대한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이 가능하고 200석은 대통령 탄핵소추 및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무효화 할 수 있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은 140석 이상의 의석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민주당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오차범위 밖 수준의 격차를 보여 제1당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여당의 패배 배경으로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가장 먼저 꼽힌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한 위원장이 취임 후 여당이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12월26일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초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취임식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대상자로 공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연초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 충청, 경기남부 등 전국을 돌며 민심 청취에 힘을 쓰기도 했다.
1월 중순에는 수직적인 당정관계가 해소되는 모습이 나왔다. 지난 1월21일 한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으로 대통령실로 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 특히 한 위원장이 사퇴요구를 거절하면서 갈등이 치솟는 모습이었다.
그간 여당에 대한 인식은 정부에 할 말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당정 갈등으로 한 위원장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올라갔다. 당정 갈등이 있던 시기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위원장이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윤 대통령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고, 차기 대권주자로도 치솟았다.
하지만 갈등 후 이틀만에 화해가 이뤄졌고, 이후 한 위원장은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입장을 ‘기존과 동일하다’며 거론하지 않았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특별대담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에 대해 “매정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 것에 대해 “진솔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고 밝히면서 수직적 당정관계 해소에 대한 기대감도 점차 낮아졌다.
이후 한 위원장은 출산 정책, 철도 지하화 등 공약을 내세우면서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2월 공천 과정에서 반발이 나타나더라도 빠르게 수습하면서 정당 지지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중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과 황상무 시민사회수석 논란, 고물가에 따른 대파가격 등의 이슈로 정권심판론이 거세지면서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도 급락했다.
뒤늦게 한 위원장이 정부에 이종섭 대사의 귀국, 항 수석의 사퇴 등을 요청했으나 수습에는 실패했다. 수직적 당정관계에 대한 인식이 해소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6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난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이 박 전 대통령의 대구 사저를 예방한 것은 TK(대구·경북)지역의 보수층 표심을 얻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보수층 집결에는 도움이 됐으나 중도층 표심에는 부정적 영향을 줬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이 여당 후보 지원 유세에 참여하려다가 급하게 취소한 것 역시 수도권과 중도층 민심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 위원장은 선거대책위원회 원톱 체계를 고수했다. 중도층과 수도권 공략을 위해 유승민 전 의원의 역할론 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한 위원장은 선을 그어왔다. 온전히 원톱 체제였기 때문에 한 위원장의 책임도 더 커진 셈이다.
전문가들 총선 패배로 ‘윤석열 아바타’라는 오명을 벗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아바타의 한계를 못 벗어났다”면서 “뒤집어서 얘기하면 차별화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과에 따라 한 위원장이 당분간 정계를 떠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이 있어 향후 전당대회에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된다. 그렇다고 윤석열 대통령한테 책임을 지라고 할 수는 없어서 한동훈 위원장 본인이 책임을 져야 되는 상황”이라면서 “일단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게 될 거고 전당대회에 나오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또 대통령 입장에서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하니까 한동훈 위원장을 그렇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요한 여론조사공정 대표는 “정치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그런데 어찌 됐든 선거에 이기지는 못했으니까 일단 잠시 동안 쉬고 다시 정치 쪽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고 판단했다.
그는 “예를 들면 보궐선거 때 다시 출마한다거나 이런 식의 형태로 해서 정치를 떠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왜냐면 동행 인터뷰를 한 것을 보니 본인이 안 떠난다, 정치 쪽에 계속 몸 담겠다고 정확하게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