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최대의 필리핀 식료품 체인인 시푸드 시티는 보통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일부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면, 농산물 코너나 해산물 코너가 ‘레이트 나이트 매드니스’를 위한 활기찬 댄스 플로어로 변신한다.
소셜미디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 모임은 조명이 조금 더 어두웠다면 다세대가 어우러진 나이트클럽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단골들에게 이곳은 그 이상이다. 음식과 음악, 춤을 통해 익숙한 공간에서 필리핀 문화를 기념하는 장소다.
파티가 열린 날 밤 DJ를 맡은 다섯 명 중 한 명인 렌슨 블랑코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식료품점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이 매장을 다니며 자랐다고 했다. “엄마는 우리를 미니밴에 태워 여기로 와서 마음껏 뛰어놀게 했어요. 여기는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에요.”
마켓에 모인 주민들은 필리핀 길거리 음식을 즐기거나 매장 한 구석에서 필리핀 전통무용을 연습하기도 한다.

시푸드 시티의 첫 매장은 1989년 샌디에고 교외인 내셔널 시티에 문을 열었다. 이 지역은 아시아계 인구 비율이 약 20%에 달하며, 특히 필리핀 커뮤니티가 두텁다. 창립자인 고(Go) 가족의 목표는 단순했다. 필리핀인들과 디아스포라 구성원들이 모국어를 편하게 사용하고 익숙한 상품을 살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이곳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됐다. 북미 전역에 약 40개 매장이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아시아계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해 있다.
첫 ‘레이트 나이트 매드니스’ 행사는 9월, 시푸드 시티의 최신 매장이 있는 데일리 시티에서 열렸다. 회사는 매장 푸드홀의 스트리트 푸드 프로그램을 재미있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알리고 싶어 했다.
DJ는 힙합과 팝, 소울, 그리고 VST & 컴퍼니의 ‘Awitin Mo, Isasayaw Ko’ 같은 클래식 피노이 음반을 틀었다. 수백 명이 몰려들었고, 연령대 구분 없이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춤추는 영상이 순식간에 퍼졌다. 이에 회사는 10월 필리핀계 미국인 역사 기념의 달과 연말까지 행사를 이어가기로 했고, 이후 전국과 LA 지역, 이글 록 등으로 확대됐다.

노스힐스 시푸드 시티에서는 밤 10시가 되자 사바 바나나, 신선한 타로 잎, 청경채 진열대 옆 농산물 코너에서 최소 500명이 춤을 추고 있었다. 밤 내내 댄스 서클이 이어졌고 여러 사람들이 차례로 중앙에 뛰어들어 춤 솜씨를 뽐냈다. 한때 틱토커이자 아티스트인 아담n 킬라가 마이크를 잡고 행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직원들은 카운터 뒤에서 춤을 추며, 아도보·레촌·롱가니사를 넣은 판데살 슬라이더와 토르티야 칩 대신 룸피아를 깔아 만든 ‘룸피아 오버로드’, 랍스터 볼, 바비큐 치킨 꼬치 등 다양한 필리핀 길거리 음식을 손님들의 쟁반에 담아준다. 주류는 판매되지 않는다. 한편, 몇몇 손님들은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평소처럼 장을 보기 위해 매장을 오간다.
자정 10분 전에도 식료품점은 여전히 북적였다.
댄스 배틀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젊은 여성들을 응원하기 시작하는 등 열기는 최고조에 달하기도 했다. 자정이 되자 직원들은 서둘러 정리를 마친 뒤, 이날 밤을 기념하기 위해 단체 사진을 찍었다.
<박성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