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향년 88세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8세.
이 명예교수의 유족 측은 이어령 전 장관이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26일 밝혔다.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대표 석학이자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맡았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고인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1967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퇴임후 석좌교수로 활동했다. 88서울올림픽 때는 개·폐회식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문화 기획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개회식 마무리를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의 등장으로 꾸미면서 정적과 여백의 미학을 전 세계에 제시하기도 했다. 1980년 객원연구원으로 초빙되어 일본 동경대학에서 연구했으며, 1989년에는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소의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고인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문화부 장관에 취임 후 국립국어원을 세워 언어 순화의 기준을 제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세워 문화 영재 양성에도 기여했다. 1990년대 초부터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일찍 파악해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표어를 제시했고,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장점을 융합한 ‘디지로그’란 신조어를 내놓으면서 현실 변화에 창조적으로 대응했다. 디지털 미디어를 매개로 한 문명전환의 시기에 누구보다도 앞서 디지털 패러다임의 한계와 가능성을 몸소 체험한 얼리어댑터였다.
고인은 60여년 동안 약 130여 종의 저서를 펴냈다. ‘디지로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성의 오솔길’, ‘오늘을 사는 세대’, ‘차 한 잔의 사상’ 등과 평론집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젊음의 탄생’,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등이 있고, 어린이 도서로는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시리즈 등이 있다.
오랫동안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불린 고인은 무신론자였지만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신앙인으로 변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을 담은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내며 생명과 영성을 언급하며 새로운 글쓰기에 나서 주목받기도 했다.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저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등 집필에 몰두해왔다. 지난해 김지수 기자가 출간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는 고인이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해 울림을 줬다. 책에는 고인이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며 “내 육체가 사라져도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으니 “그만큼 더 오래 사는 셈”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그해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 사망에 조시(弔詩)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로 추모하며 국가장의 유족 측 장례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LA에서 검사로 일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5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