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 재단이 일본고대의 씨족 계보서인 『신찬성씨록』 역주본을 출간하였다.
3권 2,2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일본고대 씨족들의 본관, 사적, 조상의 유래 등 실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료이다.
이 책은 고대일본의 왕경과 그 주변지역(畿內)에 거주하는 1,182씨의 씨족지를 집성한 것이다. 8세기말 헤이안시대를 연 환무(桓武) 천황의 칙명으로 개시되어 815년에 완성되었다.
각 씨족들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계보를 기록한 점에서는 족보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조상의 사적을 기록하고 특히 천황가 봉사의 연원, 유래를 기록하고 있어 정치성이 강한 계보서이다.
『일본서기』 편찬 이후 100여 년 만에 중앙거주자의 씨족지를 집성한 것은 계보장악을 통한 천황제 국가의 존속과 지배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전체의 구성은 천황가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씨족들을 황별(皇別)로 배치하고, 일본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후예씨족들을 신별(神別)로, 외국계인 도래계 씨족의 후손들을 제번(諸蕃)으로 수록하였다. 이들은 일본왕권을 구성하는 씨족들이며 상당수는 현실의 천황에 봉사하는 관인층이다.
이 계보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종가와의 관계이다. 본종의 정점에 있는 존재는 천황가의 황조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이다. 이것은 천황가의 존엄과 정통성을 주장하고 이러한 신성성에 의해 천황제 국가를 지배해 나간다는 메시지였다.
신별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는 씨족들은 대부분 귀족층이고, 천황가의 최고 본존과 분리할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전체의 7할에 육박하는 황별과 신별의 씨족들은 천황제 국가의 지배계층이자 혈연적, 의제적 동족집단으로서 강한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씨족 상호간에도 수없이 동조관계가 형성되어 수직적인 계보만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의제적 동조 씨족군이 만들어졌다.
한반도계 씨족 중에서 특징적인 것은 필두에 나와 있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인 화조신(和朝臣)이다.
이 씨족은 『신찬성씨록』 편찬을 시작한 환무(桓武)천황의 외척으로 당시 도래계 씨족의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우경 제번(하)에 기록된 씨족은 백제 의자왕을 출자로 하는 百濟王氏로부터 시작한다.
의자왕의 아들 선광의 후손들로서 도래씨족 중에서 특별 지위를 부여받은 씨족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이번 역주 작업을 통해 한국계 씨족 150씨를 새로 밝혀냈다고 밝혔다.
이들의 상당수는 출자개변을 통해 일본계 혹은 중국계로 편입된 씨족들이고, 당시 출자개변의 실태와 성격을 말해주고 있다.
『신찬성씨록』에 등재된 씨족 중에서 한국계는 기왕에 편재된 163씨와 새로 발굴한 150씨를 합하면 313씨로 전체의 26퍼센트에 달한다. 이중에서 백제계가 202씨, 고구려계가 52씨, 신라계가 48씨, 가야계가 10씨, 고조선계 1씨 등이다. 백제계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양국의 역사적인 인적교류, 우호관계에 기인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신찬성씨록』이 한반도계 이주민들이 일본고대사회에서 어떻게 정착해 가는지, 2세, 3세들의 삶과 의식은 어떠했는지, 동화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사료라고 지적했다.
민족의 이동과 정착, 동화의 과정과 이들 후손들의 출자의식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으며 현재의 재일한국인 문제, 중국의 조선족, 중앙아시아에 퍼져있는 고려인 문제, 기타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교민들의 문제를 전망해 보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박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