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경험 책으로…’환자가 된 의사들’ 장르되다
한인 존스홉킨스 교수 난치병 투병기도
유방암 극복한 의사의 치료과정·조언도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에서 입장이 바뀌어 질병과 싸우는 환자가 된 후 겪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풀어낸 책들이 ‘위로의 책’ 장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일본 치매 의료의 대가 하세가와 가즈오 박사가 지난 7월 펴낸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는 한평생 치매를 연구해 온 의사가 치매 당사자가 된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하세가와 박사는 세계 최초로 표준 치매 진단법을 만들고, 일본 치매 케어 시스템의 초석을 닦은 정신과 전문의다. 지난 2017년 88세였던 당시 치매를 진단받은 후 이듬해 이를 공표했고 치매에 걸린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앞서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는 일본에서 출간 직후 6만 부가 판매되며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 7위에 올랐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존스홉킨스대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는 지난해 11월 난치병 투병기를 기록한 ‘마음이 흐르는대로’를 펴냈다. 5년 전 신경매개저혈압 판정을 받은 후 좌절을 딛고 완치가 불가능한 병과 함께하는 삶에 적응하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신경매개저혈압은 자율신경계 기능에 장애가 생겨 어지러움, 구토, 실신 등이 야기되고 온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는 질환이다. 애초 소아 정신과 환자들의 사례를 책으로 낼 계획이었던 지 교수는 난치병에 걸린 뒤 환자로서 겪은 느낌과 깨달음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 2019년 6월 나온 ‘유방암, 굿바이’ 역시 의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된 의사가 암을 이겨낸 이야기다. 박경희 세브란스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레지던트 1년차였던 26살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서 환자로서 겪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박 교수의 회복을 도운 선배 의사 이수현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교수의 유방암 치료 과정과 현실적인 조언 등도 담겨있다.
의사들의 환자가 된 경험을 다룬 ‘질병 에세이’ 바람은 꾸준히 이어질 전망이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의사들이 환자가 된 후 질병을 치료하고 극복한 이야기는 외롭고 긴 투병 생활 중에 있는 환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울림이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명예나 처세를 위해 건강·질환 관련 책을 수 없이 찍어내려는 의사가 아닌 질병을 치료하고 극복해 낸 과정을 에세이를 통해 환자와 독자들과 공유하려는 의사가 늘어나는 것은 의료계에도 긍정적이다.
‘환자가 된 의사들-고장난 신들의 생존에 관한 기록’의 저자인 정신과 전문의 로버트 클리츠먼은 책을 통해 칼 구스타프 융의 ‘상처입은 치유자’ 개념을 설명하면서 “9·11테러로 여동생을 잃고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환자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우울증에 처박히는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처음으로 알았다”고 고백했다. ‘상처입은 치유자’란 아픔을 겪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