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독립을 인정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갈등과 감정이 격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직접 총을 들고 싸우겠다며 나서고 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린 두렵지 않으며,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정서는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크라이나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1922년 소련에 완전히 흡수되기 전까지 격렬한 저항을 벌였다. 1930년대 초 스탈린은 소작농들을 집단 농장에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 기근을 조장했고, 당시 4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사했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지역에 러시아인과 다른 소련 시민들을 대거 이주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41년 6월 나치가 소련을 침공했을 당시 우크라이나인 상당수는 나치를 환영하며, 독립을 위해 나치에 협력하기도 했다.
소련 흡수는 우크라이나를 내부적으로 분단시키기도 했다. 일찌감치 러시아 통치를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는 러시아와 더 강한 유대관계를 맺은 반면, 서부는 유럽 강대국 영향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공화국 독립을 승인한 돈바스 지역 주민 상당수도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있다.
Вічна пам'ять загиблим на Майдані! Вічна пам'ять Героям Небесної Сотні! pic.twitter.com/HDXCd6iARJ
— Володимир Зеленський (@ZelenskyyUa) February 20, 2022
1991년 소련 붕괴로 우크라이나는 독립했지만, 이같은 내부 갈등으로 통일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부 지역 주민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전환을 거부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던 이전 시대를 갈망했다.
갈등은 2004년 격화되기 시작했다. 2004년 친러시아 성향 빅토르 야누코비치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투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오렌지 혁명이 발발했다. 다시 실시된 선거에서 친서방 성향 빅토르 유셴코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셴코 전 대통령은 러시아 영향력에서 벗어나겠다며,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 추진을 공언했다. 나토도 2008년 우크라이나의 가입 의사를 환영하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2010년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다시 친러시아로 기울었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2013년 11월 EU와 무역 회담을 중단하고, 러시아와 경제 관계를 회복하기로 했다. 이후 수도 키예프에선 수개월 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자 수십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2014년 2월 의회가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해임을 투표에 부쳤지만, 같은 달 무장 세력은 크림반도 의회를 장악하고 러시아 깃발을 세웠다. 러시아는 같은 해 3월 국민투표를 거쳐 크림반도를 병합했고, 다음달 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도 독립을 선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를 부정하면서 돈바스에선 정부군과 분리주의 세력 간 교전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현재까지 1만5000명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
2019년 4월 당선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호소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면서 군사 압박을 가해왔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돈바스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병력을 파견하고 우크라이나 국가 지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의 러시아 혐오 감정은 극에 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저명 정치 전문기자 크리스티나 베르딘스키흐는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증오이자 EU, 나토, 민주주의를 향한 우크라이나 움직임에 대한 복수”라며 “나이 든 미치광이에게 공정한 선거와 혁명은 최악의 꿈”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