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고기와 가죽 그리고 모피 등을 얻기 위해 멸종되거나 생존의 위기를 당하는 동물들은 수 없이 많다.
그뿐 아니라 집안을 꾸미는 장식물로 희생 당한 동물들 또한 많다. 그 중에 북아메리카에서 수난 당한 짐승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비버(Beaver)’가 있다.
1609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파견된 헨리 허드슨이 맨해튼에 도착해 강을 따라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지금의 허드슨 강이다. 이듬해 그는 여러 가지 물품을 가지고 네덜란드로 돌아갔는데 그 중에 비버 모피 가죽이 있었다.
겉모습이 다람쥐와 비슷한 비버는 몸길이가 60∼70cm정도로 크고 배의 노와 같이 넓적하게 생긴 꼬리는 30∼40cm나 된다. 주로 하천에 나무를 잘라 흙이나 돌을 더해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 두고 그 물 속 한가운데에 섬처럼 나무를 쌓아 놓고는 거기서 집을 짓고 산다.
해서 ‘물 위의 건축가’로도 불리는데 이들이 만드는 댐의 길이는 보통 20-30m이지만 수백m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는 집 둘레의 물밑 통로를 이용해 밖으로 나간다.
이 때문에 그들의 털은 거의 완벽한 방수 기능뿐 아니라 방한 기능까지 있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구잡이 어부들이 포획한 것을 유럽까지 운반할 때 거친 북대서양의 추위와 파도를 견디는 데는 최고였다.
허드슨이 들여온 모피가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영받게 되자 네덜란드는 이에 눈독을 드리고 맨해튼을 식민지로 삼고 자국의 수도 이름을 따라 ‘뉴암스테르담’이라 했다. 오늘의 뉴욕이다.
게다가 비버 모피로 만든 펠트모자의 탄력과 윤기가 최고로 알려지면서 부유층들에게 외출 필수품으로 인기를 끌자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여러나라들도 비버모피에 혈안이 되어 끼어들게 되었다. 이들은 모피의 대가로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총기와 의류, 그리고 럼과 위스키같은 주류를 주었다.
이는 모피거래를 둘러싼 인디언 부족들간의 치열한 대결로 이어지고 영국과 프랑스는 각기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부족들의 연맹을 부추킴으로써 세 세력간의 비버 전쟁은 100여년간 잔인한 살육전이 되고 말았다.
결국 프랑스가 영국에 패배하고 그 와중에 탄생하게 된 ‘캐나다’는 영국령이 되었으며 캐나다의 상징 동물로도 남게된 비버는 무차별한 남획으로 200만 마리 정도나 희생되었으며 이는 북미의 수로(水路)마저 완전히 바꾸는 결과까지 낳았다.
비버는 지름 30㎝의 나무를 10~15분 내에 갉아 쓰러뜨릴 수 있으며 그들이 만든 비버 댐은 SUV 차량이 그 위를 지나가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그러다 보니 한때 아르헨티나에서는 비버와의 전쟁도 벌어지기도 했다. 비버들이 수령 100~150년 된 나무들을 마구 갉아 쓰러뜨리는 바람에 숲이 황폐해지고 강을 막아서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에 이 비버댐이 마치 필터와 같은 역할로 물이 하류로 유입되기 전에 오염물질을 걸러내 수질을 개선시켰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가하면 최근에는 비버의 댐으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심화된다는 지적도 있다.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비버들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이에 따라 이들이 만드는 습지가 북쪽의 땅을 더 빨리 녹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헌데 최근에 이런 비버가 러시아와 전쟁을 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의 새로운 우군(友軍)으로 떠올라 화제다.
벨라루스와 국경으로 접해있는 우크라이나 북서부 일대에 비버댐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이 일대를 침공 경로로 검토했던 러시아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지자 비버들이 아무런 방해 없이 만든 댐 덕분에 두터운 진흙과 습지가 형성됐는데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습지가 많은 이 일대가 더욱 축축해지는 바람에 러시아의 침공을 지연 시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버가 때 아니게 러시아의 적으로 등장하면서 비버의 인간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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