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던 이백과 동시대를 풍미하며 시성(詩聖)으로 불린 당나라 시인 두보. 그의 시(詩)는 대부분 명작으로 꼽히지만 특히 안록산이 일으킨 전란을 겪으면서 지은 시 중에 많다.
그 가운데 이른바 ‘삼리(三吏)’나 ‘삼별(三別)’이 있다. 삼리는 세 관리란 뜻으로 전란에 부족한 관군을 충원하기 위해 장정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는 등의 횡포와 이로 인한 백성의 고통이 잘 그려져 있다.
그 중 석호리(石壕吏)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두보가 지방의 하급 관리로 부임하는 도중 날이 저물어 석호촌의 어느 민가에 투숙하면서 경험한 일이다. 그 집에 관리가 찾아오자 주인 노인이 담을 넘어 도망치고 그 아내가 나와 하소연했다. ‘세 아들이 모두 군대에 끌려가 집에는 우리 노부부와 젖먹이 손자를 기르는 며느리밖에 없다.
그러니 꼭 사람을 데려가겠다면 저라도 가서 군사들의 밥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관리는 할머니를 데려갔다. 세가지 이별이란 ‘삼별’ 중에 ‘신혼별(新婚別)’이 있다. 혼례를 올린 다음날 아침에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내는 젊은 여인의 애끓음과 다시 살아 만나기만을 바라는 절절한 마음이 그려져 있다.
‘머리 올리고 부부 되었으나/ 낭군과의 잠자리 덥혀질 겨를도 없이/ 저녁에 혼인하고 새벽에 이별하니/…/ 뼈저린 마음 창자에 스민다/ 어렵게 비단치마 장만했지만/ 다시 만날때까지 입지 않고 그대를 위해 화장도 닦아 버리리라.’ 그 중의 일부다.
지난 주 전쟁터에서 두 팔과 눈을 잃고 돌아온 우크라이나 군인과 그를 안고 있는 젊은 아내 사진이 전 세계인의 눈시울을 적셨다. 아내의 표정엔 남편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러나 살아서 돌아와 준 것에 대한 안도의 감정이 뒤섞여 보였다.
이를 보면서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반전(反戰) 노래 ‘탈주병’이 떠올랐다. 소설가이자 엔지니어이며, 평론가, 배우 외에도 트럼펫을 연주하는 재즈 음악가이기도 했던 실로 만능 연예인인 프랑스 문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보리스 비앙.
그가 남긴 400여 개가 넘는 샹송 중 가장 유명하면서도 사랑을 많이 받는 곡이 바로 ‘탈주병’이다. 7년 넘게 끌던 인도차이나 전쟁이 끝날 줄 알았던 젊은이들은 새로 발발한 알제리 전쟁이 징병제로 치러지면서 이미 군복무를 마쳤는데도 다시 징집 영장을 받는 등 전쟁으로 프랑스가 무척 어수선하던 때 전쟁의 허구성을 느낀 비앙은 전쟁을 거부했다. 그리고 노래 ‘탈주병’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보냈다.
“대통령 각하, 편지 한 통을 드립니다. 꼭 읽어 주십시오. 수요일 저녁까지 전쟁터로 나가라는 징집영장을 받았습니다. 전 전쟁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죽이려고 이 세상에 있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화내지 마십시오. 전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탈영할 겁니다. 저는 아버지가 죽고 형제들이 전쟁터로 떠나고 아이들이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고통을 당하고 무덤에 누워계신 제 어머니는 모든 것을 비웃습니다. 제가 포로였을 때, 전쟁은 제 아내를 훔쳐갔고, 제 영혼마저 도둑질해 갔습니다. 저의 모든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 사람들에게 말할 겁니다. 복종하지 말라고.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징집을 거부하라고.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한다면 당신 피나 흘리시지요/…/”
이 노래는 대환영을 받았지만 방송금지를 당했다. 그러나 그 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비앙이 노래 했듯이 전쟁은 삶을 파괴하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