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조업 등 국내 산업 현장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력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동시장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내국인 근로자의 취업 기피로 일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사업장의 숨통을 틔어줄 것이란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질 좋은 일자리 등 근본 대책 없이 외국 인력을 열악한 환경에 투입하는 것은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현장 구인난 여전”…정부, 외국인력 고용한도 2배 확대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노동시장 활력 제고를 위한 킬러규제 혁파방안’은 외국인력 확대 등 외국인 고용허가제 개편을 골자로 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외국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 도입된 제도다.
베트남, 필리핀 등 협약을 체결한 16개국의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발급해 제조업과 건설업, 농·축산업, 어업, 일부 서비스업 등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연간 5만 명 수준이던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를 올해 역대 최대인 11만 명으로 확대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중소 제조업과 농축산업 등을 중심으로 산업 현장의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고용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인난의 대표적인 지표인 ‘빈 일자리’ 수는 21만 개에 달한다.
정부는 이러한 구인난의 원인으로 산업 현장과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낙후된 근로 환경으로 인한 내국인의 취업 기피 등 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고용허가제 취지에 맞게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사업장을 대상으로 올해 외국 인력을 대폭 확대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방안은 이러한 현장의 애로를 해소하면서 외국 인력을 더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외국인력 활용에 가장 큰 제약 요소로 꼽혀온 사업장별 고용 한도를 2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그간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외국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고 싶어도 사업장별 한도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를 크게 늘린 것이다. 구체적으로 ▲제조업 9~40명→18~80명 ▲농·축산업 4~25명→8~50명 ▲서비스업 2~30명→4~75명 등이다.
이에 따라 올해 고용허가제 도입 규모도 1만 명 추가돼 총 12만 명으로 늘었다. 정부는 올해 12만 명에 더해 내년에도 외국인력 규모를 더욱 늘린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아울러 인력난을 호소하는 택배업과 공항 지상조업 상하차 직종에도 외국 인력을 허용하고, 숙련 인력에 한해서는 4년10개월 일한 뒤 출국 후 재입국하는 절차 없이 계속 근무가 가능하도록 관련 내용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20년이 된 만큼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외국인력 쿼터는 늘리면서도 내국인 채용 등 노동시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최소화하도록 모니터링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인력난 완화 등 숨통 트여” vs “외국인만 밀어넣는 땜질식”
정부의 이번 발표에 중소 사업장을 비롯한 경영계는 일제히 환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외국인력 활용을 원활하게 하는 등 중소기업계가 건의한 현장규제 혁신이 대폭 반영됐다”고 했다. 중견기업연합회도 “인력난 완화 등 기업의 숨통을 틔우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내국인 기피로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손에 대한 부담을 덜고 사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활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외국인력 확대방안 등 후속 조치를 건의했다.
이들은 “2배로 확대된 사업장별 고용 한도는 아예 폐지하고, 지역과 업종에 무관하게 고용허가제를 전면 적용하는 등 과감한 조치를 적극 모색한다면 고질적인 인력난을 온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정부가 외국인력 투입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산업 현장에 빈 일자리가 생기는 원인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임금, 형편없는 노동환경 때문”이라며 “정부가 할 일은 외국 인력을 열악하고 위험한 일자리로 밀어넣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정부의 대책은 오로지 저렴한 임금에 위험한 일을 전담할 외국인 노동자 확대에만 집중돼 있다”며 “이러한 땜질식 정책은 궁극적으로 실패에 도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번 대책에 외국인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12월 한파 속에 캄보디아 국적 외국인 노동자가 난방 장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이에 정부는 후속 조치로 ‘외국인 근로자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발표해 불법 가설 건축물을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고용 허가를 불허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편법 운영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고용부는 이번 대책이 규제 혁신에 초점이 맞춰진 점을 강조하면서 오는 9월부터 연말까지 농업 분야 고용허가 사업장 4600여개소를 대상으로 ‘주거환경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추가 개선 방안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 외국인 근로자 사망으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처벌을 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외국인 고용을 제한하는 등 산업안전 사각지대를 줄여나갈 방침이다. 최근에는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근로자 형제가 공사장 붕괴 사고로 숨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연내 추진 중인 외국인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100여명 시범 도입,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 시 특정 권역 내에서만 허용, 불법체류 문제 등을 놓고서도 논란이 적지 않는 상황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금은 급격한 산업·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어떻게 하면 외국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현장에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인력난을 해소하면서 근로조건 개선과 산업재해 예방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