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후보 공천 과정을 보면 마치 시장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에 빅보스가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휘장을 치고 앉아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손을 들어주는 듯한 모양새다.
구경꾼들은 그 빅보스가 누군지 다 알고 있지만, 그 빅보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 하다. 매일같이 격분하고, 항의하는 억울한 자들을 외면한 채 말이다.
한국의 선거 제도는 미국과는 상이하다. 특히 정당 기구가 공천이라는 것을 통해 후보를 선정하는 한국과 당내 경선방식이나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를 선정하는 미국의 후보 결정과정은 큰 차이가 있다.
한국의 그 정당 기구라는 것이 얼마나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인지 우리는 매일 들려오는 한국 뉴스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당연히 당의 1인자의 의도대로, 또는 정권 수반자의 의도대로 전략 공천이나 단수 공천으로 후보가 선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현역은 선수가 많으면 많다고 컷오프 되고, 아니면 험지 출마가 강요된다.
한국에서의 대의 민주주의는 정당의 횡포로 그 의미가 무색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국회의원 후보 선정 과정은 미국 선거를 지켜봐 온 한인들에게는 상식 이하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유권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내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일까?
정당 정치의 대원칙 중 하나는 정당이 대의 민주주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각 주마다 후보 선정 방법이 다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지난 2012년 도입된 Top Two Candidates Open Primary Act에 따라 정당에 관계없이 상위 두 사람이 본 선거에 출마하여 우열을 가리게 된다.
이전까지 정당별 프라이머리를 치렀던 캘리포니아는 이 비정당형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면서 유권자는 등록 양식에 표시한 선호정당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자에게 투표할 수 있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선호정당에 관계없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가 총 득표 수에 관계없이 결선투표에 진출한다. 이때 후보자가 과반수(50% + 1)를 얻었더라도 결선 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즉, 한국과 달리 각 정당의 후보자 선출 과정에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직접적이고 공식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없이 유권자의 선택만으로 결선 진출자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필자가 이곳에 살아서가 아니라, 유권자의 의중이 잘 반영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양당 정치가 잘 정착된 미국이지만 점차 대중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어지고 같은 정당에 대한 동질감이나 소속감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다원화됨에 따라 양당이 전통적으로 고수하고 있는 플랫폼만 갖고는 모든 유권자들을 만족 시키기 어려워졌다.
때문에 한국도 후보 공천이 정당이 해야 할 고유의 기능인 지를 재고해 시급하게 혁신할 필요가 있다.
만약 공천제도 자체가 사라지고 개방형 예비선거를 도입해서 현역이던 누구던 각 지역구에 출마하고싶은 후보자들 가운데 유권자가 선출할수 있다면 각종 공천에 관련된 공정성 논란이나 사천 논란 등의 잡음은 일시에 해소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역 의원이 이 유리할 수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범죄 사실이나 비리 관련 유무, 또는 지역구 유권자의 평판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은 자명하다. 바로 그것이 합당한 대의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현역 프리미엄 여파를 줄이고자 한다면 ‘선수제한제’를 둬서 이를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GDP 세계 순위 13위로 이젠 명실상부한 선진국을 자부하는 한국이지만 정치는 아직까지 이념과 기득권 패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당이 공천권을 갖고 있는 한 당 대표나 정권의 독식을 막을 수 없으며, 정당은 정치의 근본 목적인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정권 창출의 목적으로부터 벗어 나질 못하게 될 것이며, 대의 민주주의 과정을 훼손하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로라 전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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