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년 전 로버트 스트라우드라는 사람이 살인죄로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다 그는 사소한 다툼으로 동료죄수를 칼로 찌른 일을 저질러 형량이 연장되어 있던 중에 또 다시 많은 죄수들이 보는 앞에서 간수를 살해하는 사건으로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형을 앞둔 아들을 구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 끝에 간신히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얻어내어 보석 없는 종신형으로 감형시켰다. 대신 평생 독방으로 살아가는 신세가 된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혼자서만 지내야 하는 정말로 고독한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감옥소 뒤뜰에서 상처 입고 비에 떨고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자기 방으로 데려다 키우며 벗으로 삼는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는 30여 년을 외부와 차단 된 채 감옥소에서 홀로 지내는 동안 300여 마리의 새를 키우면서 새에 대한 전문가가 되었고 책까지 저술하였는데 조류학계의 참고 자료가 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것은 새장 속의 새들에게서 창살에 갇힌 자신을 보며 자유를 갈망하면서 일구어낸 꿈인 셈이다. 그리고 악명 높은 고도 알카트라즈에서 생을 마감했다.
여기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14년 동안 8번의 탈출을 시도하다가 번번이 잡히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끝내 성공한 이다. 그의 가슴엔 나비 문신이 있어 빠삐용이라 불렸다. 살인 누명을 쓰고 잡힌 그가 마지막으로 기아나에 있는 ‘악마의 섬’으로 불리는 절해고도 수용소로 옮겨온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이고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천연감옥으로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그는 이곳 천길벼랑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야자수 열매껍질로 만든 포대를 타고 탈출한다. 그러면서 외친다. ‘이 놈들아 나 아직 여기 살아있어’ 그 때 ‘Free as the wind’ 음악이 흐른다. 바람처럼 자유롭게…
마야 안젤루의 시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를 떠올리게 한다. ‘자유로운 새는/바람결을 타고/날아 내려가네/…/주황빛 햇빛 속에 담그고/하늘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네/…/좁은 새장에서 새장에 갇힌 새는 노래하네/겁에 질린 떨리는 소리로
잘 알지 못하지만/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것들에 관해/그의 노랫소리는/저 먼 언덕에서도 들리네/자유에 대해 노래하기 때문이라네.’
지난해 2월 센트럴 파크 동물원에서 빠져나온 뒤 1년 동안 ‘뉴요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수리부엉이 ‘플라코(Flaco)’가 지난 달 숨졌다. 새장에 길들어 있던 만큼 뉴욕 도심 한복판에서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만 예상과 달리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뉴욕의 주택 창가에 앉아 건물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녀 뉴요커들에게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이 부엉이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고 한다.
NYT는 ‘작은 아파트에 사는 많은 도시 주민이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구를 플라코에 투영했다’며 ‘이민자들의 경우 도심에 적응해 가는 플라코에게서 자신이 겪고 있는 고단한 삶의 단면을 보기도 했으며 자유를 꿈꾸게 한 것’이라고 했다.
자유로운 나비의 빠삐용은 불굴의 의지로 불가능하다는 고도에서 탈출해 자유를 얻었지만 로버트 스트라우드는 평생 갈망하던 자유의 꿈을 새를 통해 이루어냈다.
마야 안젤로는 소수자가 인종차별로 겪는 제약된 삶과 고통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해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는 억압받는 모습을 노래했다. 그리고 새장에서 벗어난 수리부엉이는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운 ‘자유의 상징’으로 기억되게 됐다. 18살이 되기 전 인종차별과 강간, 십대임신을 모두 경험했던 안젤루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책을 썼고 많은 수십개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의 종신 교수가 됐다. 인종차별로 겪는 제약된 삶과 고통을 새장에 갇힌 새에 대비시켜,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는 억압 받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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