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촉구하는 국민청원 동의 수가 폭증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실제 추진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강경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탄핵을 시사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치적 파장과 역풍을 우려해 일단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기류다.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정청래 최고위원은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이 곧 100만 명을 돌파해 200만, 300만으로 이어질 기세”라며 “아, 검찰독재 아, 국정농단 아, 영원토록 추방하리라”라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유도되고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이태원 참사에 관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회고록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며 “이게 대통령 말 맞냐. 이게 나라냐.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 최고위원은 “국민의 눈을 속이고 국민의 귀를 가리고 국민을 억압하고 야당을 탄압하고 끝이 좋은 정권을 본 적이 없다”며 “매에는 장사 없다고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 국민과 정권의 한판 싸움에서 반드시 국민이 이길 것이다. 그날을 준비합시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를 요구하는 게 민심인 만큼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 최고위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해당 청원을 담당하는 상임위 위원장이기도 하다. 법사위는 회부된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에 올리거나 폐기할 수 있다.
서영교·정청래 최고위원도 이날 이태원 참사 음모론 논란을 언급하며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압박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에 동의한 이는 이날 오전 80만명을 넘어섰다.
이 청원은 지난 20일 등록됐고 23일 동의 요건인 5만명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난 27일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김 전 의장이 회고록이 공개되면서 동의자 수가 급증하는 양상이다.
탄핵 여론이 불을 붙자 민주당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장외집회에 참석해 채 상병 순직을 둘러싼 대통령실 수사 외압 의혹을 두고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을 뛰어넘는 최악의 국정농단”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특검법을 수용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또다시 거부한다면 박근혜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7일 정책조정회의에서는 윤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을 거론하며 “내각제 국가였다면 총리가 스스로 물러날 만한 지지율 아니냐”고 반문했다.
강경파 재선 의원으로 최고위원 출마를 준비 중인 민형배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비정상적 사고를 가진 대통령에게 미래를 맡기는 것은 무면허 의사에게 수술을 받는 거나 다름없다”며 “2년도 너무 길었다”고 적었다.
다만 민주당은 탄핵 추진과 관련 당 차원의 공식 논의는 아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간 민주당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정점이 윤 대통령으로 밝혀지면 탄핵 사유로 삼을 수 있다고 밝혔는데 아직 탄핵 동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200석이 필요한데 여당의 이탈표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한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일단 법사위 청원소위에서 해당 청원을 심사하며 탄핵 명분을 쌓는데 집중할 전망이다. 국민청원 첫 관문인 법사위 청원소위 위원장을 맡은 김용민 의원은 “절차대로 청원을 심의할 것”이라고 했다. 청문회 등을 통해 탄핵 여론을 환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태원 참사 관련한 윤 대통령의 발언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음모론에 중독된 극우 유튜브 정권이란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며 “법사위 청원소위는 관련 법령에 따라 처리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 청원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윤 대통령에 직접적인 해명을 거듭 촉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당 차원의 논의를 할 정도로 탄핵 여론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있지 않다”며 “일단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최종 동의자 수가 얼마냐에 따라 당 대처가 달라질 수 있다”며 “청원 동의 기간이 20일까지 인데 그때에는 무슨 답이라도 내놓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