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말 일본 교토시의 유서 깊은 사찰 주지승이 죽자 그의 아들 오타니 고즈이가 주지승 자리와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그는 됴코로 가서 황족들과 귀족들만이 다니는 가쿠슈인(学習院)에 다니다 그만두고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갔다.
그러다가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된 경로와 불교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주로 실크로드를 따라서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를 여러 차례 탐험했다. 그러던 중 중국 대륙 서부 끝에 서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둔황(敦煌)의 막고굴과 쿠처에서 불상, 불경, 벽화, 토기, 고문서(古文書) 등의 유물들을 대량으로 발견했다.
막고굴은 중국 북조(北朝) 시기부터 원나라에 걸쳐 만든 동굴 735개에 걸쳐 벽화와 불상, 문서 등 수 만점이 있는 거대한 불교 유적이다. 신라 승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나왔다.
당시는 실크로드를 따라 19세기- 20세기초 오타니 뿐만 아니라 유럽 열강들이 패권주의를 과시하면서 경쟁적으로 중앙아시아 유물들을 마구잡이로 빼갈 때였다. 지금 이 유물들은 최소 13개국의 30개 박물관과 연구기관에 흩어져있는 실정이다.
이때 고즈이가 수집된 유물들은 거의 5,000여점이나 되었는데 이를 일명 ‘오타니 컬렉션’이라 부른다. 고즈이는 이 유물들을 고국으로 가져와 효고현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보관했다.
그러나 자신이 주지승으로 있는 사찰에서 충당한 탐험 비용이 과도해 재정파탄이 날 지경에 이르고 횡령과 위조문제로 형사처벌까지 확대되자 고즈이는 컬렉션의 1/3인 1500 여점을 한 광산재벌에게 판매해 돈을 마련하는 등 노력했지만 결국 주지승 자리에서 물러나고 은거에 들어가야 했다.
헌데 컬렉션을 구매한 이 광산재벌은 이를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에게 바쳤다. 그리고 이 유물은 총독부 박물관에 있다가 1945년 해방 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남게 됐다. 말하자면 해외 약탈 문화재의 소유국이 된 것이다.
이는 국외 반출된 한국 문화재의 환수를 추진하면서도 오타니 컬렉션 처럼 풀기 어려운 숙제를 남기기도 한다. 발굴이냐 수집이냐 아니면 약탈이냐의 한계 때문이다.
지난 11일 조선 시대 형법의 기초가 된 귀한 자료 ‘대명률(大明律)’이 2016년 보물 지정 9년 만에 취소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난품인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한 사립 박물관장이 2012년 장물업자에게서 사들인 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물’이라며 입수 경위를 속여 보물로 지정 받았다고 한다. 헌데 보물로 지정되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자 장물아비가 경찰에 이를 고발한 것이다. 국보, 보물과 같은 문화유산의 지정이 취소되는 첫 사례가 됐다.
대명률이 무엇인가? 서양을 대표하는 법이 로마 제국의 로마법이라면 동양은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大明律)을 꼽는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수나라, 당나라 율령을 참조해 1368년 반포한 범죄와 형벌에 관한 법전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 법제에 근간이 되었다.
조선의 경우 국정 운영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있었으나 형벌 집행시에는 대명률에 준해 결정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됐던 대명률 판본은 초간본을 수정 편찬해1389년 명나라에서 간행한 것으로 중국에 있는 1397년 판본에 앞선 것으로 세계 유일 희본으로 알려졌다.
어쨋거나 다른 사람도 아닌 박물관장이 저지른 일에 더 머리가 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