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세기 말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당한 바이킹 에릭은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섬을 발견하고 ‘녹색의 땅 (Greenland)’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람들을 유인하기 위한 역사상 최고의 부동산 마케팅이었다는 설이다. 우스운 건 실제로 푸른 땅인 아이슬란드는 ‘얼음의 땅(Iceland)’이라 불린다.
어쨋거나 이렇게 해서 노르웨이 바이킹들이 개척한 그린란드는 노르웨이 왕국의 영토가 되었고,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역시 노르웨이의 속령이었다. 그런데 1397년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1세가 덴마크와 노르웨이, 스웨덴을 하나로 묶는 동맹을 성사시키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겉으로는 3국 동맹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덴마크가 주도권을 쥔 것이었다.
130년 후 스웨덴이 독립해 동맹에서 이탈하지만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그대로 연합을 유지하면서 노르웨이의 속령들 또한 자연히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의 일부가 되었다.
300년이 지난 1814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덴마크-노르웨이는 나폴레옹 편에 섰다가 함께 패배하자 승전국들로 부터 영토를 분할당했다. 이 때 스웨덴은 노르웨이 본토를 돌려받았는데 속령이었던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이 땅들은 경제적 가치도, 전략적 중요성도 없는 ‘얼음 덩어리’와 ‘가난한 어촌’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덴마크는 노르웨이 본토를 스웨덴에 빼앗기는 대신 자신들의 오래된 속령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아무도 원하지 않던 얼음 덩어리 그린란드를 떠안았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덴마크를 동정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는 희토류와 석유가 넘치는 보물섬이 되었고, 기후 변화로 북극 얼음이 녹자 북극항로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면서21세기 지정학적 핵심 지역이 되었다. 어제의 짐덩어리가 오늘의 자산이 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노르웨이가 애써 개척한 땅을 덴마크가 동맹과 연합을 통해 슬쩍 자기 것으로 만든 것으로, 이를테면 원래 주인은 손해를 보고, 중간에 낀 자가 승자가 된 완전 어부지리였던 셈인데 전쟁에서 졌으면서도 결과적으로 큰 수확을 얻게 된 것이다.

한편 손해본 듯한 노르웨이는 오늘날 북해 석유로 세계 최고 수준의 소득을 누리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덴마크보다 훨씬 부유하다. 하지만 영토적으로는 덴마크가 더 큰 카드를 쥐고 있는 형태인데 그린란드는 1979년과 2009년 자치권을 획득했고 완전 독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담이지만 흥미롭게도 그린란드에서 바이킹 후예는 미스터리하게 사라지면서 이누이트족이 그린란드의 주인으로 남아 인구의 88%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4,000년 전 시베리아에서 베링 해협을 건너온 동아시아계 민족으로 한국인, 몽골인과 유전적으로 가깝다. 해서 아이들이 우리처럼 몽골 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아무튼 그런 아무도 원하지 않던 얼음 덩어리가 오늘에는 세계 강대국들이 탐내는 보물섬이 된 셈인데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을 공개적으로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덴마크가 ‘그린란드는 판매대상이 아니다’고 일축하면서 좌절됐다.
헌데 미국이 그린란드를 탐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알래스카를 매입했던 수어드 국무장관도 일찍이 그 가치를 검토한 바 있으며, 1946년 트루먼 대통령 또한 1억달러에 매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그 의중을 드러내고 있어 2019년 매입 발언이 일종의 ‘간보기’였다면 이번에는 돈과 설득, 힘을 아우르는 치밀한 전략으로 압박하면서 그린란드의 여론도 분열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린란드는 영토 문제를 넘어, 미래 자원과 북극 패권에 대한 신냉전의 대결장으로 변모하는 듯하다. 그린란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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