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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참수된 왕, 찰스 1세의 유령

참수된 왕, 수갑 찬 권력…권력과 법의 경계는 어디인가

2026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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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1649년 1월 30일, 런던. 군중 앞에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흰 셔츠에 단정한 복장, 그리고 당당한 걸음걸이. 그는 이제 참수될 왕, 찰스1세였다.
그는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므로 의회나 법원이 간섭할 수 없다고 믿었다. 세금도, 전쟁도, 뭐든 그건 왕의 일이지 의원들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해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의회를 군대를 동원해 강제 해산시키고11년 간 독단으로 나라를 굴렸다.

결국 오래된 갈등과 여러 요인이 얽히면서 내전이 터졌고, 찰스1세는 패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왕이 자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결과를 낳았다.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 찰스1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신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죽는다.’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유를 억눌렀던 장본인은 바로 그였다.

찰스1세를 처형시킨 사람은 올리버 크롬웰이다. 청교도 신앙으로 무장한 의원이자 탁월한 군사 지휘관이었던 그는 왕을 쓰러뜨린 후 공화정을 세웠다. 헌데 4년 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크롬웰 또한 군대를 이끌고 들어가 의회를 강제 해산한 것이다. 찰스 1세가 했던 바로 그 짓이었다.

이후 크롬웰은 ‘호국경(Lord Protector)’이라는 직함으로 왕보다 더한 권력을 휘둘렀다. 자유를 외치며 시작된 혁명이 또 다른 권위주의의 억압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비록 당시 의회 역시 부패했고, 크롬웰에게는 혼란을 수습해야 할 현실적 이유가 있는 등 역사적 배경에 명분과 맥락, 권력구조의 차이가 있어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혁명의 언어는 늘 자유와 정의를 말하지만, 권력을 잡고 나면 그 언어가 종종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는 것. 해서 역사학자 존 액턴 경은 이런 명언을 남겼는가 보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말이다.

크롬웰이 죽은 후, 영국은 왕정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무덤에서 끌려 나와 사후 처형을 당했다. 머리는 장대에 꽂혀 웨스트민스터 홀 지붕 위에 20여 년간이나 걸렸다 한다. 그러다 폭풍이 몰아치던 밤, 바람에 날려 떨어졌고 한 경비병이 주워 굴뚝 속에 숨겼다. 이후 수집가들 사이를 전전하다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서 유료 전시까지 됐다.

비로소 땅에 묻힌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역사의 복수는 이렇게 길고도 철저했던 것이다.
아무튼 얼핏 교과서에서나 만날 법한 찰스 1세, 그의 이름이 돌연 뉴스에 소환되고 있다. 그것도 동서양을 가로질러서 말이다.

한국 법정에서 내란 혐의로 기소된 전직 대통령의 재판에서 그의 이름이 비유로 등장했고 같은 시기,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는 낯선 헤드라인이 떠돌았다. ‘찰스 1세 이후 처음으로 체포된 왕족.’ 400년 가까운 시간을 건너 그가 두 나라의 뉴스에 동시에 출몰한 셈이다.

군을 동원해 헌정 질서를 흔든 혐의로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과 수백 년 만에 처음 수갑을 찬 영국 왕족. 두 사건의 내용과 맥락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법 앞에 예외가 있는가?’

찰스 1세의 재판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다. 왕을 법정에 세운다는 것 자체가 세계관을 뒤흔드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후 서양 정치사는 서서히 허나 분명하게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원칙.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사실은 누군가의 목이 잘림으로 비롯된 것임이다. 그리고 그 찰스 1세 유령의 그림자가 오늘날 다시 어른거릴 줄이야!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메아리친다’고 한 마크 트웨인의 말이 새삼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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