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 뉴 이어’서 소진 역 맡아
“촬영하면서 힐링받고 싶어서 선택”
“자극 대신 편안 따뜻한 영화 원해”
“힘들었던 시기 현장서 마음 치료”
영화 ‘해피 뉴 이어'(감독 곽재용)는 2000년대 감성의 로맨틱 코미디다. 보기에 따라 진부할 수도 있고, 이제는 너무 낡아버렸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엔 일부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우리가 바라는 연말 겨울 풍경이 담겨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힘들었던 지난 1년을 위로하고 여전히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의지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그리고 마스크 같은 건 쓰지 않고 인원수에 상관 없이 모여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
배우 한지민(39)도 이 점 때문에 ‘해피 뉴 이어’를 선택했다고 했다. 영화는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은 물론이고 이제 황혼을 바라보는 중년의 사랑도 어우른다. 그는 대본을 본 뒤 이 영화가 개봉할 때가 되면 코로나 사태도 웬만큼 정리돼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이 영화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코로나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그는 ‘해피 뉴 이어’가 “나를 위로해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한지민을 화상 온라인 인터뷰로 만났다. 그가 이번 작품에서 맡은 역할은 호텔 직원 ‘소진’. 소진에겐 15년 간 짝사랑 해 온 친구 ‘승효'(김영광)가 있다. 그가 일하는 호텔에서 고위층 인사들의 점을 봐주는 무속인은 소진의 얼굴을 보더니 대뜸 올해 안에 고백을 받을 거라고 말한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고백을 할 만한 사람은 승효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승효가 대뜸 다른 여자와 결혼 소식을 발표하자 소진은 슬프고 실망스럽기만 하다.
‘해피 뉴 이어’는 한지민 외에도 이동욱·강하늘·원진아·윤아·김영광·이광수·서강준·이진욱·고성희 등 스타 배우가 대거 출연한 작품이다. 한지민이 연기한 소진이 중심이 돼 극을 이끌지만, 이들 배우들이 분량을 나눠 갖기 때문에 비중이 크다고는 할 수 없다. 이벤트성으로 참여한 영화로 여길 수도 있지만, 한지민은 ‘해피 뉴 이어’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보통 저는 작품 선택할 때 고민하는 편인데, ‘해피 뉴 이어’는 깊게 생각 안 하고 결정햔 작품입니다. 이 작품 하면서 힐링하고 싶었어요. 많은 배우가 나오니까 부담감 덜고 촬영하면서 힐링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해피 뉴 이어’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살아남을 확률이 큰 시대에 흔하지 않은 착한 사랑 얘기다. 소진은 승효의 결혼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결국 승효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그리고 소진 또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다. “무난하고 편한하고 따뜻한 영화가 연말에 풀린다면 나는 보고 싶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지민은 인터뷰 도중 잠시 눈물을 보였다. 올 한해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을 받고 눈물을 왈칵 쏟은 것이다. 그는 올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떠나보냈다고 했다.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조부모 손에 자랐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기만 하자 현장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선택하게 된 영화가 ‘해피 뉴 이어’였다. 그는 이 작품을 “어둠에 있던 나를 꺼내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현장 가서 연기하는 게 나를 치료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감독님의 순수한 개그를 들으면서 마냥 웃을 수 있었어요. 소진이라는 인물이 제가 최근에 했던 다른 캐릭터에 비해 밝았어요. 그게 좋았습니다. 그래서 소진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한지민의 최근 행보에는 종횡무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능 ‘백스피릿'(넷플릭스)에도 출연해 전에 보여준 적 없는 더 솔직한 모습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지민은 진행자인 백종원과 함께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다. 그는 “요즘엔 과거엔 하지 않았을 것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 거예요. 지금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년이나 내후년엔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나를 규정하고 나를 단정짓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은 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은 그때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해요. 나쁜 형태가 아니라면 변화에 익숙해져야죠. 물론 용기가 필요하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