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기후변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기후 불안’이 심리치료의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6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최근 10개국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절반이 채 되지 않는 45%가 기후 불안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이 같은 불안을 호소하는 사례가 이전에 비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심리 치료 영역에 포함시킨 것이다.
포틀랜드에 사는 앨리나 블랙(37)은 5살 아이의 플라스틱 장난감, 일회용 기저귀, 겹겹이 비닐로 포장된 간식 등을 보면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며 “땅 위에 내 흔적이 남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블랙은 원래 스스로를 그저 환경에 관심이 많은 워킹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포틀랜드에서 2년간 지속된 산불과 폭염은 그의 불안을 자극했고, 어느 순간부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한 강박 행동을 반복했다.
매일 아침 가뭄, 화재 등 기후 위기와 관련된 뉴스를 읽고, 수도 사용량을 체크하며, 가정용 발전기도 샀다.
그는 점점 심해지는 불안 증세에 상담 치료를 받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기후 불안’을 검색하다 기후 전문 심리학자 토머스 J. 도허티(56)를 발견, 그와의 상담 치료를 시작했다.
기후 위기에 관한 심리치료 권위자인 도허티 박사는 ‘생태 심리학’을 개발하고, ‘기후 변화와 행복’이라는 제목의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일반적인 심리학자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도허티 박사는 10년 전 기후 변화가 사람들의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물리적 재난에 휘말리지 않더라도, 기후 위기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는 사람들의 심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학자가 이를 ‘가설’ 쯤으로 여겼지만, 최근 ‘기후 불안’은 실존적 불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불안을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치료 방법을 모색 중이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불안이 테러, 학교 총격, 살인 사건 등 다른 사회적 위협에 의한 불안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최근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16세에서 25세 사이의 1만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10개국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기후에 대한 걱정이 일상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대답했다. 또 75%는 “미래가 두렵다”, 56%는 “인류는 망했다”고 응답한 바 있다.
도허티 박사는 ‘환경 오염을 생각하면 심한 공황 발작을 경험하는 18세 학생’, ‘손주들을 볼 때면 슬픔에 휩싸이는 60대 빙하학자’, ‘친구들이 환경오염 물질을 무심코 소비하는 모습에 좌절하는 50대 남성’ 등 많은 환자를 치료해왔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위즈(18)는 자신을 ‘정치에 관심이 있고 뉴욕 타임스를 즐겨 읽는 전형적인 뉴욕 시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구 대기의 이산화탄소량을 나타내는 ‘킬링 곡선’ 등을 보며 환경 위기에 관한 불안함에 학교 공부조차 진행할 수 없는 공황 발작을 경험했다.
프랭크 그랜쇼(69) 전 지질학 교수는 손녀가 자신의 무릎에 잠이 들면, 손녀가 앞으로 살면서 겪게 될 변화가 두렵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심리적인 문제를 일반적인 심리학자가 아닌 기후 위기에 정통한 심리학자와 함께 다룰 때 치료 효과가 훨씬 좋았다고 설명했다.
블랙도 도허티 박사와 치료를 시작했다. 하루는 블랙이 “지난 여름 포틀랜드 온도가 46.7도까지 치솟았을 때, 불 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며 “세상이 정말 망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블랙의 말을 조용히 듣던 도허티 박사는 “(데이터들에 의해 제시된) 기후 변화의 속도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만큼 빠르지 않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미래에는 여전히 좋은 날이 올 것이며, 당신의 자녀들도 좋은 날을 보낼 것이다”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블랙은 안도감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회상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심리학자들과의 상담은 큰 소용이 없었지만, 도허티 박사와 상담을 하고 처음으로 가슴의 맺힌 것이 풀리는 것 같았다.
블랙은 “온난화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거나, 두려움을 아예 갖지 않는 상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내 두려움을 잘 다루는 상태까지 치료하고 싶다”고 했다.
도허티 박사는 많은 환자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고 그것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치료의 가장 큰 부분은 사람들의 소비에 대한 죄책감을 다스리게 하는 데 있다”며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극히 개개인에게 부담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